매일신문

母性은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모성/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심성은 옮김/동녘 펴냄

'모성애 부재'로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다. 아기를 낳기만 하면 모성애가 샘솟듯 넘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고도 모성애가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그런 사연을 인터넷 여성 사이트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엄마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성애 부족'으로 고민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많은 선배 엄마들은 '아기를 낳는다고 모성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기에게 쏟아 붓는 정성만큼 모성애도 생겨난다'고 조언한다. 모성애는 아기와 자주 눈을 마주치면서 조금씩 쌓여 가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진리처럼 믿어온 '모성애=본능'이라는 등식은 오류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지은이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모성애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만들어진 감정이다'고 말한다. 모성애란 하나의 감정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성애란 감정은 본질적으로 우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17∼20세기 프랑스 사회사를 탐구해 여성들의 모성적 행동 경향을 파헤치고 있다. 모성애가 당연한 상식이 아니었던 중세 시대부터 모성애가 상식이 된 근대까지 과정을 신학과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지위, 아이들에 관한 철학적 담론, 옛 문헌과 문학 작품, 각종 통계를 바탕으로 증명, 혹은 주장하는 것이다.

바탱테르는 모성애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예로 18세기 프랑스에서 만연했던 유아 위탁을 든다. 당시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도시 외곽의 유모에게 보내 키웠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모 손에 자란 아이들은 무관심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대부분 죽어갔다. 심지어 이미 유모의 집에서 두세명의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같은 유모에게 자식을 또 보냈다는 사실은 유아 위탁이 사실상 유아 방기였음을 보여준다. 또 일년 남짓 동안 31명의 영아를 죽게 한 유모도 있었다.

지은이는 '이런 징표가 모성애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은 아닐지라도, 어머니가 아이를 맡긴 뒤 수년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이는 모성애가 존재하는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1780년 파리의 치안 감독관 통계에 따르면 매년 파리에서 태어난 아기들 가운데 5% 미만의 아기들만이 모유를 먹고 자랐다. 의료 수준이 낮았던 당시의 유아 생존율은 모유 수유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어머니 젖을 물리지 못할 경우라도 부모가 적절한 급료를 지불하고 좋은 유모를 고를 경우 생존율이 높았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아기를 성가시게 여겼던 듯하다.

평안과 재미, 여유를 최대의 관심사로 알았던 중세 여성들은 모유 수유를 어리석은 일로 간주했다. 친어머니와 시어머니들은 산모들에게 말했다. '모유 수유는 품위 있는 부인이 할 만한 고상한 일은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랬던 탓에 여성들은 젖을 먹이기 위해 유방을 꺼내는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녀들의 기쁨은 육아가 아니라 사교에 있었다. 그녀들은 밤새 춤추고 노래하고, 드레스를 자랑하고, 정오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모유 수유, 육아를 거부하는 많은 여성들은 이런 시를 즐겨 읽었다.

'소리를 지르는 수많은 아이들보다/ 덜 매력적인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하나는 아빠한테 말하고, 또 하나는 엄마한테/ 그리고 또 하나는 빵을 먹자마자 운다/ 그리고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당신은 개처럼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세기 말 루앙에서는 유기된 아동의 90%, 파리에서는 84%, 마르세유에서는 50%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영아 사망률은 어머니 젖을 먹는가 아닌가에 따라 2배 정도까지 차이가 났으며, 유기 상태인가 아닌가에 따라 최고 10배까지 차이가 났다. 따라서 당시 유아 위탁은 명백히 영아 살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부모들은 아기를 유모에게 맡기기를 꺼리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런 점을 볼 때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없던 모성애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지은이는 17, 18세기까지 없었던 모성애가 19, 20세기에 갑자기 극대화된 이유를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웠던 국가가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덕주의자들과 행정 관료, 의사들은 어머니들에게 보다 선량한 감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젖을 물리라'고 설득했다. 일부 여성들은 이 같은 사회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남성들의 경제적 사회적 동기 부여에 복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이야기'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젖을 물림으로써 행복과 평등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성이 모성적 임무를 다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약속을 믿은 것이다.

'아기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시오. 그러면 행복과 존경을 얻을 것이오.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시오. 그러면 가정 내에서 당신들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몇몇 여성들이 집안 일을 담당하면 대부분 여성들이 누리지 못했던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고 단단히 믿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이는 남성이 담당할 수도 없고, 담당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필수적이고 숭고한 임무가 되었다.'-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든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또 1960년대 이후 모성 감정이 다시 쇠퇴하고 새로운 사랑, 즉 부성애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부성애의 등장은 '모성애'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 더 이상 차이가 없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416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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