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며

오늘 우리는 한 분의 위대한 신앙인을 하느님 품에 맡겨 드립니다. 김수환 추기경-그 존함은 누구나 귀에 익었고 그 존재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뿐 아니라 이 나라의 큰 어른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 안에 잠들었습니다. 그런 어른이 남기고 가신 엄청난 빈 자리 앞에서 그분을 여읜 우리의 마음은 깊은 슬픔에 잠기지만 평생을 말과 행동으로 자비의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자 온 힘을 다한 이 충실한, 착한 목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주님께 우리는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분명 이 나라 천주교회를 오롯이 이끌고 국내외에 드높인 역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저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른 오늘의 세상에서, 놀라우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입장이나 신분을 막론하고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회 원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니라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더없이 비우고 낮추신 주님 자비의 은혜로운 복음이었음을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확신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내치고 비천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모상으로 태어나고 구원된 그 불가침의 존엄을 이웃끼리도 나라도 지키고 받들어야 한다는 김 추기경의 복음적인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를 이루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갈피에서 혼란과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와 힘과 위안을 구하고자 그분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의 음지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 불의에 희생된 사람, 아무리 일해도 억눌려 사는 노동자와 농어민들, 심지어 희망을 잃은 죄수들-이들은 더더욱 그분을 가슴으로 가까이 느끼고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한 그분에게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예수님 말씀을 곧이 곧장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가도 아니요, 사회 운동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사제였고 참다운 목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양들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그분의 알아듣기 쉽고 분명한 목소리는 누구나 문제의 핵심을 다시 보고 양심을 성찰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었습니다. "목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일이 없고 또 말해 주어야 할 것을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성 그레고리오의 '사목규범'에서) 하라는 어려운 길을 꿋꿋이 걸어간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꾸밈없고 소박한 인간다움이 모두의 마음에 친근하게 와 닿던 분, 노년에 자화상을 이 '바보야'하며 그려내는 순진하고 넉넉한 마음의 임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독선을 모르며 잘못은 준엄하게 꾸짖으면서도 사람은 단죄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도리어 누구보다도 먼저 겸허하게 자신의 허물을 통감하며 "주님, 이 죄인 김수환을 용서하소서"하고 기도한 분, 더없이 명철하면서도 은근한 유머와 미소로 사람을 늘 따뜻이 맞아주는 온후한 분이었습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그 존재만으로도 빛을 뿌리는 분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거센 풍랑을 가르며 헤매는 일 없이 바른 뱃길을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던 고마운 별, 이제 그 큰 별이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밤하늘의 별이 지는 것은 동이 트고 새날이 밝아옴을 알린다는 것을.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추기경님, 우리들 모두를 하늘에서 지켜보고 도와주시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아멘.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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