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개츠비)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기묘한 자세로 양손을 뻗고 있었다. 비록 그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가 분명히 온몸을 떨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 하지만 선창의 끝으로 여겨지는 한 곳에서 녹색 불빛 하나가 깜박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김욱동 옮김/민음사/278쪽/8천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는 한물간 극작가가 할리우드에 가서 겪는 문화 충격을 다룬다. 금전적인 사정으로 유럽과 브로드웨이의 영광을 뒤로한 채 쓸쓸히 LA로 귀양을 가게 되는 미국 작가들의 운명적 여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우디 앨런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는 좌회전시 신호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을 제외하면 -뉴욕에 비해서- 장점이 단 한 가지도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많은 미국의 작가들은 거대 제작사라는 활의 화살이 되어 자신의 과녁과는 상관없는 이곳저곳을 날아다녀야 했다.
문호 스콧 피츠제럴드도 그러한 경향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젊은 시절의 그는 그야말로 데카당이라면 데카당, 보헤미안이라면 보헤미안이었다. 정식으로 작가로 이름을 날린 뒤의 그의 행보는 화려했다. 수개월 간격으로 뉴욕, 런던, 파리, 로마를 오가며 글을 썼으며, 헤밍웨이와 술을 마시고 제임스 조이스와 토론했다. 그러나 흥청망청하던 그의 젊음과 '재즈 시대'가 같이 저물자 넘치는 빛과 알코올 중독, 아내의 지병밖에 남지 않았던 그는 결국 할리우드로 품팔이를 떠나야만 했다.
비록 돈이 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할리우드 시절을 악몽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많은 부분 수정됐지만, 그는 비교적 얌전하게 MGM과의 계약을 이행했으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작의 시나리오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 그 바닥에서 인정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삶에서의 마지막 해인 1940년에 자신의 자전적 중편 소설 '다시 찾은 바빌론'을 '내가 마지막 본 파리'라는 시나리오로 각색했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피츠제럴드의 유산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세인들의 이목을 끈다. 1956년에는 앞서 말한 '내가 마지막 본 파리'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으로 제작, 개봉된다. 1976년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각색으로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화되며, 1990년대 초에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동 작품이 거론되며 국내에서 때아닌 유명세를 누리기도 한다. 2009년에 이르러 데이빗 핀쳐의 연출과 브래드 피트의 연기로 그의 단편을 다시 보게 됐으니 21세기에도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계속되는 셈이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70세의 한 남자, 70세의 한 아기였는데, 요람의 양 모서리 너머로 발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공지은 역/인간희극/176쪽/7천500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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