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푸른숲 펴냄

'1640년대 한국은 중국 청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세계사:인류의 유산', 미국, 홀트, 라인하르트 & 윈스턴, 2008)

'한국은 중국의 옛 영토였다가 1910년 일본에 합병됐다'('우리시대의 역사:전문가들의 관점', 멕시코, 에스핑헤, 2005)

'4, 5세기 일본인들은 한반도 남해안에 작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세계사', 미국, 톰슨/워즈워드, 2004)

'한국은 암시장을 통해 재료와 기술을 도입하기만 하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나라다'('1900년대 세계사', 이탈리아, 아틀라스, 2001)

'북한의 침입에 대비해 서울 시내의 광고판들에는 레이더 설비가 감춰져 있다'('미래와 대면하다:21세기 세계의 이슈', 캐나다,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 1998)

외국 교과서에 실린 한국 관련 내용이다. 'IT 강국' '월드컵 개최' '한류' '국민소득 수준'을 내세운 '우리'가 판단하는 국제적 위상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과 밀접한 미국, 일본, 중국, 대만의 교과서는 한국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식민사관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다른 국가의 교과서는 아예 한국에 무관심하거나 독도, 동해 표기, 동북공정 문제에 대해 한국의 입장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세계 40여개국 500여종의 교과서를 검토해 이들이 한국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교과서 왜곡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차원의 학술적 노력과 문화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큰 목소리로 이를 외교 문제화할 게 아니라 한국학 지원, 꾸준한 국가 홍보 등으로 민간의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

타자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볼 때 객관적 자기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외국의 시각에 비춰진 한국의 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터이다.

외국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의 평균적 이미지는 어떠할까. 저자는 "고대부터 중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서 '은둔의 왕국'으로 지내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 근대화를 시작해 한국전쟁 이후 미국 자본주의를 좇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평균적 이미지일 뿐이다. 한국과 밀접한 국가의 교과서에는 역사, 문화 등 면에서 왜곡으로 점철돼 있고, 먼 나라들은 후진 또는 종속국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인식의 틀 밖에 있다는 것.

대만 사회과 교과서는 한국이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것은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중국에 승리를 거두면서 얻어다준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영국의 필립 앨런 출판사가 펴낸 '고등지리'는 한국을 미국이 이끄는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는 '진열창'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교과서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현지 한국학 교수 대다수가 일본학 전공자들인 멕시코, 교과서 자유 발행제에 따라 출판사별 경쟁적 공급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에 따른 구입이 이뤄지는 북유럽, 공립 '교육위원회 선정'-국·사립 '광역단체장과 학교장 선정' 형태로 이뤄지는 일본 등등. 각 국의 교과서 제도에 따라 어떤 관점이 지배적이고, 어떤 내용에 비중을 두는지, 한국의 교과서 제도는 수정·보완할 점이 없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439쪽, 1만6천원.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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