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매일신문사 편집국 '이웃사랑 제작진' 앞으로 자그마한 상자가 소포로 배달됐다. 상자 안에는 헌혈증서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증서는 모두 401장이나 되었다. 그 중에는 1987년 증서도 있었다. 적게는 320㎖에서 많게는 500㎖에 달하는 헌혈증 모두 401장을 더해 보니 160ℓ나 됐다. 60㎏ 체중(1인당 5~6ℓ)의 성인 30명의 피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401장의 헌혈증서를 보낸 주인공은 대구 동구 효목동에 사는 김정아(38·여)씨. 소포에 적힌 주소지로 찾아가 보니 30㎡(10평) 규모의 그리 크지 않은 피자가게였다. 김씨는 취재진의 방문에 당황하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했다. 김씨는 "힘든 시기일수록 이웃끼리 어려움을 나누자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헌혈증서 모으기였다"면서 "헌혈증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전달하고 싶어 매일신문 '이웃사랑' 제작진에 보냈다"고 했다.
김씨가 헌혈증서 수집에 나선 것은 경기 한파가 몰려오기 시작한 지난해 8월부터다. 남편 권영문(45)씨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도울 방도를 찾다 헌혈증서를 가져오면 음식을 무료로 주는 방법을 떠올렸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헌혈증서 1장에 4천원짜리 스파게티, 2장에 8천원짜리 바비큐치킨, 3장에 1만500원짜리 피자를 무료로 주기로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피자주문이 '무섭게' 쏟아졌다. 헌혈증서만 받고 판매한 스파게티, 피자값이 모두 150만원가량이었다.
단골도 많이 생겼다. 10차례 가까이 헌혈증서를 이용해 피자를 시킨 한 고객은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 헌혈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 김씨는 "주로 전화주문 배달이다 보니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씨 부부의 선행을 장삿속으로 보는 삐딱한 시선도 없지 않았다. "피를 팔라는 말이냐"는 비아냥도 있었고 6개월이 지나자 헌혈증서 모으기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캠페인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체인점들에게 권유해 헌혈증서 모으기 운동을 더 확대했다. "우리 동네에서 헌혈증서를 쓸 만한 사람은 거의 다 내놓은 것 같아요. 그래도 헌혈하는 고객들을 위해 증서 1장당 스파게티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요. 행복해지는 방법 중 나눔만큼 큰 게 있겠습니까."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