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시민들, 金추기경에 더욱 애틋한 애도의 심정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나고 사제 서품을 받고 사목의 첫발을 내디딘 곳이 모두 대구·경북지역이기에 지역민들의 김 추기경에 대한 애도의 심정은 더욱 애틋하다.

김 추기경은 1922년 5월 대구시 남산동 225의 1에서 순교자 집안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추기경은 다섯 살 때 천주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경북 선산에서 군위로 이주했고, 이때부터 부친은 옹기점과 농업을 겸해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김 추기경은 군위에서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뒤 5, 6학년 과정의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를 다녔다. 1951년 대구 계산동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안동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때문에 대구, 안동, 김천, 군위를 포함해 대구·경북민들의 김 추기경에 대한 마음은 남다르다.

마정웅(70·대구시 수성구 파동·전 대구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씨는 "1970년대에 김 추기경의 형님인 김동한 신부님이 대구 달서구에서 결핵 요양원을 운영할 때 김 추기경을 여러 차례 뵈었다"며 "너무나 온화한 분이셨고, 사회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셨다"고 했다. 마씨는 "특히 1980년대 초반 명동성당에서 열린 '전국 가톨릭 언론인 대회'에 축사를 위해 나선 김 추기경이 시작할 무렵 마이크가 1~2분가량 꺼지자, '오늘의 한국 언론이 이렇습니다'는 촌철살인으로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고 회고했다.

마씨는 17일 오후 3시 가족과 교우 10여명과 함께 계산성당 추도 미사에 참석한 데 이어 18일에도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울먹였다.

경북 칠곡 '신나무골 성지'를 관리하고 있는 마백락(71)씨는 "40여년 전 추기경께서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계실 때부터 자주 뵈었는데, 너무나 소탈하고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며 "추기경은 당시 지역 가톨릭 학계에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셨다"고 말했다. 마씨는 이어 "지난해 6월 서울 혜화동 추기경 사무실에 병문안을 갔을 때 추기경께서 가문의 신앙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추기경 친가와 외가쪽 신앙을 8개월 동안 정리한 뒤 지난 9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추기경 조카분 등에게 보고서를 올렸다"고 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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