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거꾸로 가는 '교육도시'

'한국만큼 교육 전문가가 많은 나라도 없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학부모들의 열정이 남다른 탓도 있지만 입시 정책이 툭하면 바뀌고 뒤집히니 웬만한 사람은 용어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고 전문가 수준이 아니면 자녀들의 입시를 도와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입 전형에 적용하는 '표준점수' '백분위점수' '과목별 등급' 같은 용어만 해도 그렇다. 이것도 제대로 모른다며 아내에게 타박을 받았다는 남자들을 주위에서 가끔 만날 수 있다. 아내가 째려보는 눈에는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남편들의 기가 어찌 죽지 않고 배겨내겠는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현실이지만 아이들을 별 탈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것도 가정마다 최소한 1명 이상의 '교육 전문가'가 포진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16일 처음 공개되면서 '교육 전문가'들로선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아졌다. 중학 3학년 경우 수성구가 포함된 대구 동부교육청이 서울 강남교육청에 이어 2위를 했다고 자부심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고교로 진학할수록, 학년이 오를수록 상대적으로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실제로 '교육도시' 대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며칠 전 황당하면서도 서글픈 얘기를 들었다.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고교에서 단 1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얘기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그것만 해도 '올해 운이 없다'며 그럴 수 있다 싶었다. 그런데 한 학부모가 그 학교로 배정받은 아이를 서울 강남도 아니고, 강북지역으로 전학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후면 자립형 사립고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고교 옆으로 주소지를 옮기면 쉽게 배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밖에서 보면 '수성구' 하면 대단하다 싶지만 몇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구의 여타 지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와 모의고사 성적을 비교하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수성구라도 같은 수성구가 아니다'는 말이 나왔다. 소수의 학교만 앞서 나가고 다른 학교들은 들러리(?)로 전락했다면 일각에서 그렇게 떠들어온 교육특구의 '경쟁력'은 이제 거의 무너졌다고 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더구나 학업수준 평가의 정확한 잣대는 아니겠지만 서울대 합격자 수를 보면 대구 전체적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인구가 두 배 가까이 되는 부산보다도 많았지만 이제는 과거만 곱씹고 있는 처지다.

필자는 공부만이 능사라고 보지 않는다. 서울대 입학자 수가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구시교육청은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열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남다르게 전인교육에 앞장선 것도 아니고 특기적성 교육에 모범을 보인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내놓고 자랑하고 다니겠건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매달리고도 결과가 너무 초라하다. 하다 못해 서울시교육청처럼 '튀는' 정책이라도 내놓으면 좋으련만 외부 요인 탓만 하는 분위기다. 특목고나 전교조 탓이 절대 아니다. 목표가 없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지역 교육계 인사들이 '말썽만 없으면 그만'이라는 안이함에 젖어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다.

지금도 이럴진대 6월 말 신상철 교육감 임기가 끝나고 나면 더 큰 문제다. 선거법에 따라 내년 6월까지 1년간 교육 수장(首長)까지 없으니 대구 교육이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뒷짐만 진 채 학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수성학군'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분발을 촉구한다.

박병선 사회1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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