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상사 도쿄지사에 근무 중인 최연욱(30)씨는 일본의 마을축제 매력에 푹 빠졌다. 지난해 8월 자신이 살고 있는 아사카역 인근에서 열린 아사쿠사 축제를 보고부터다. 순수한 마을 주민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마을축제가 조용하게 숨죽이고 있던 마을에 터질 듯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목격한 것. 2차대전 이전까지 도쿄 유일의 번화가였던 아사쿠사는 간토 대지진과 2차대전으로 심각하게 붕괴됐지만 지금은 에도시대의 풍경을 간직한 관광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모두 '아사쿠사 마을축제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씨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마을청년회와 주민들이 연극과 전통예술을 공연하고 음식을 팔며 불꽃놀이로 축제를 마무리하는 그 하루가 마을에 깃든 모든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 놀라웠다"고 했다.
축제는 모두 자원봉사로 이뤄졌다. 노점에서 파는 음식과 물건은 상점보다 더 쌌다. 훈도시를 입은 청년,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은 가마를 들고 전통의식을 재현했다. 볼거리는 많고 바가지는 없는 마을 축제. 이제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일본 관광의 맨 앞자리에 올려놓는 도쿄의 3대 축제로 성장했다. 이 축제에 맞춰 오는 한국 관광객도 계속 늘고 있다.
지역축제가 주민들을 단합시키고, 다른 지역과 교류를 넓혀주면서, 지역의 정체성과 자랑거리를 홍보해 경제적 이익과 고용 창출로까지 이어지는 도심재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축제를 통한 도심재창조의 가능성을 엿보다
대구에서도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도심 속 축제를 집중해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로 변모시키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 신천둔치 일대에서 일주일간 열린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 '2008 시민예술가 시대, 신천에서 예술과 놀자'는 100만에 가까운 시민들을 불러 모았다. 문화, 예술, 음악, 공연, 먹을거리가 어울린 흥겨운 마당은 대구를 대표하는 대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했고, 축제가 사람들을 모은다는 공식을 확인했다.
현재 연간 대구 중구에서 열리는 축제는 모두 9개. 중구청이 8월 주최하는 '한여름밤의 영화음악회'를 제외하면 모두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약령시축제, 동성로축제, 패션주얼리축제는 모두 5월에 열리고 화교중국문화축제, 봉산미술제, 서문시장 축제는 10월에 열려 '축제 집중화'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5월은 '다운타운 축제'로, 10월은 '역사·문화·예술 축제'로 한데 모아 축제의 계절을 만든다면 대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축제 한마당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작고, 산발적이며, 기억되지 않는 여러 개의 축제보다 지역적 경계를 넘는 대규모 축제를 만들 수 있다면 도심재창조의 기초를 하나 세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심재창조에 성공하고 있는 세계 각국 도시들은 수준 높은 문화예술 행사나 축제를 통해 지역의 역사, 문화, 자연경관을 소재로 하는 고부가가치 문화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해남 땅끝축제, 함평 나비축제, 남도기차여행, 하동 웰빙축제 등을 기획한 정준 (사)농촌체험휴양협회 대표는 "지역의 문화축제를 특화하면 지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뿐만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만들 수 있다"며 "도시 축제의 경우 쇠퇴하는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들이 그곳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의 축제를 본받자
프랑스의 전형적인 지방도시 앙굴렘은 1970년대 이전까지 침체 일로에 있었다. 그러다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시민,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중지를 모아 1974년부터 매년 1월 국제만화 페스티벌을 열었다. 지역민은 만화적 발상과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출했고 건물, 간판 등 도심의 모든 것을 만화와 연계시켰다. 이로 인해 만화 산업은 물론 관광, 교통 등 연관산업의 규모가 커졌다. 1990년에는 '국립만화와 이미지센터'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만화를 수집, 보관하고 이를 박물관이나 도서관, 멀티미디어 등을 통해 알리는 체계를 구축했다. 뒤따르는 고용 창출은 덤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비뇽 축제(매년 7월 중순~8월 중순)는 시행 초기 10년간 만성적자에 시달렸다. 돈만 쏟아 붓는 셈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축제의 가능성을 보고 계속 지원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이제는 아비뇽 전역의 성당, 수도원, 학교, 채석장 등이 축제 공연장이 된다. 아비뇽 시민들은 일년 내내 축제를 준비하며 일상 탈출을 꿈꾼다. 축제 기간에는 연극, 발레, 음악회 등의 공연이 계속되고 거리와 광장에서는 거리 공연가, 악사, 배우 등이 즉흥공연으로 관광객들을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세계 최대의 종합예술축제인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매년 8월 한달)은 '문화예술과 공연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고 나선 대구시가 가장 본받을 만한 축제다.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연극, 마임, 퍼포먼스, 콘서트, 오페라 등이 에딘버러 시가지 전역에서 공연되는 축제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축제 초기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극단들이 홍보를 위해 공연장 주변에 모여들었고 이를 '공식 축제 연극의 주변'(the fringe of the official festival drama)이라고 언급하면서 프린지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우리나라 공연인 '난타'가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전회 매진되면서 국내외에서 대성공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의 프린지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도심 축제의 핵심 콘텐츠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대구에만 1만여개에 이르는 각종 아마추어 공연 단체, 동호회, 모임 등이 있어 프린지 페스티벌의 인프라는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대구 중구 축제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남대 국문과 박승희 교수는 "지역 축제를 성공시키는 힘은 유명 공연이나 예술가 초청 여부가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와 아마추어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다"며 "대구 도심의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를 하나의 축제로 모으고 그 속에 참여와 어울림의 구조를 갖출 수 있다면 도심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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