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 추기경과 어머니

김수환 추기경은 진정 이 시대의 큰 스승이었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따뜻했던 김 추기경이기에 이념과 계층, 종교를 넘어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이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여 애도했다.

그가 보여준 '위대한 삶'의 밑바탕엔 어머니란 존재가 있다. 4년 전 출간된 '사랑합니다 내게 하나뿐인 당신'이란 책엔 김 추기경이 쓴 '어머니, 우리 어머니!'란 산문이 실려 있다. "우리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크다"는 그의 글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김 추기경의 어머니 서중화 여사는 대구가 고향인 분이다. 옹기장사를 한 김 추기경의 아버지와 혼인 후 평생을 가난에 쫓겨 여기저기로 이사 다니며 옹기나 포목을 파는 것으로 가계를 꾸렸다. 김 추기경은 어머니를 두고 "고생도 고생도 무던히 했던 분"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장사꾼이 되려는 아들의 등을 떼밀어 신학교에 입학시켰다. 신심 깊은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어느 사제 서품식을 본 뒤 두 아들을 신부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김수환 추기경이란 인물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읜 막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고, 자녀를 엄하게 키웠다. 하지만 먹는 것, 입는 것은 부잣집 자식들처럼 했다. 가난 속에서도 자녀를 귀하게 키운 것이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집에서 떡을 하지도 않았고 엿'과자 따위의 군것질도 할 수 없도록 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이나 상을 당해 슬퍼하는 집을 반드시 찾아보고 기도로써 또는 적으나마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주며 이웃과 아픔을 함께했다. 은퇴 후 생활 보조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 순간에는 각막을 기증하고 영면한 김 추기경의 나눔은 어머니로부터 감화를 받은 것이었다.

김 추기경은 어머니를 母港(모항)과 같은 분,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또 그 품을 떠나서는 살아 있을 수도, 아니, 존재할 수조차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했다. 김 추기경과 그 어머니의 삶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곱씹게 한다. 동시에 부모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란 생각에 젖게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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