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혹독한 겨울 가뭄

웬만한 자연재해에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대국 중국이 사상 최초로 1급 가뭄경보를 발령했다. 지난해 겨울 이후 화북, 서북, 황하 대부분 지역에서 80일 내내 한방울의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다. 일부지역에서는 강수량 '0'인 날이 100일이 넘어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기록했다. 정부집계에 따르면 가뭄피해를 입은 전국 경지면적은 2.76억무, 작물피해는 1.36억무이고, 그 중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면적이 3천981만무, 이미 말라 비틀어진 면적이 394만무에 이르고, 346만 여명이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166만두의 가축이 먹을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허베이, 산시, 안후이, 장수, 허난, 산동, 샨시, 간수 등 8개성이 전국 가뭄피해 면적의 95%에 이르는데 겨울밀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대부분 싹이 약하거나 발육불량이고 포기 벌기가 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누렇게 마르거나 죽어가는 면적도 상당하다. 만약 사태가 계속되면 당장 양식조달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식량안보가 위험에 빠졌다.

갑작스런 겨울가뭄에 대해 중국 정부도 당황한 듯 보인다. 국무원의 발표처럼 이번 가뭄은 면적이 너무 넓고,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정도가 심하다는 특징이 있지만, 문제는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가뭄은 다른 자연재해와는 달리 사람과 돈이 있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재해이다. 사스와 폭설, 지진의 자연재해를 겪었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가뭄은 갑작스럽거나 심각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한 전문가의 말이다. "중국 같은 대국에서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다반사다. 더군다나 최근 기술의 발달로 더 심한 자연재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의 가뭄은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특수성이 있다."

특수성? 가뭄재해에 특수성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나는 사람의 문제 즉, 농민들의 무관심이다. 원래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마르면 농민의 마음은 촛불처럼 타들어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무덤덤하다. 농민들이 농작물이 마르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 지방정부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지방정부가 먼저 각 지방의 사태를 보고하면 중앙정부는 각 지방의 상황을 종합하여 정부차원에서 경보를 발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번 가뭄에는 일이 거꾸로 되었다. 지방정부는 태무심하고 중앙정부가 먼저 경보를 발했다. 그러면 왜 피해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농민과 지방정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풍년이 들든지 농작물이 말라죽든지 상관이 없는 현실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농지제도상 토지구조가 너무 분산되어 있다. 토지승포제 하에서 각 농가마다 승포(할당)받는 토지가 너무 적다. 몇 무도 채 안 되는 농가도 많아서 지금의 농산물 시세로 치면 풍년이 들더라도 총수입이 몇 푼 되지 않는다. 일년 내내 전 가족이 고생해서 얻은 수입이 도시에서 1, 2개월 일하는 품삯보다 적은 것이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농사를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또 다른 문제는 돈의 문제 즉, 농지의 수리시설 낙후 및 부족문제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가뭄지역을 시찰한다고 하자 군인과 경찰이 재해지역에 동원되었다. 손에 손에 바가지를 들고 바쁘게 오고 가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야말로 말라터진 논밭이 웃을 지경이다. 근본적으로 해갈도 불가능할 뿐더러 최종 수확물을 다 팔아도 동원된 인원의 일당도 되지 않을 것임은 뻔하다. 혹자는 연평균강수량의 문제라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재해지역의 평균강수량이 400~800㎜ 정도인데, 토지의 60% 이상이 연평균강수량 300㎜가 안 되는 이스라엘이 유럽의 주방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은 관개시설의 부족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 역시 토지승포제와 관련이 있다. 승포제로 인해 토지가 분할되어 있고 또 승포(承包)가 소유(所有)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확실히 보장된 미래도 없는 상황에서 규모의 효율을 위해 관개시설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대신 대대적인 투자를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 만든 제도가 말썽이다. 먹고살 땅도 주지 않고 농민을 농촌에 붙들어 놓아서 농노로 만드는 지금의 중국 농지제도가 문제다. 해결책은 하나이다. 농민을 토지에서 해방시키는 일이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뭄극복, 농촌문제 해결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헌법에 사회주의라 규정하고 있는 중국의 근간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이고 공산당의 성격을 재정립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나 당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연의 큰 가르침과 조우한 지금, 한번쯤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 틈에 우리는 내년 식량가격의 폭등을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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