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고 물리는, 속고 속이는 '보험의 세계'

보험은 미래에 닥칠지 모를 어려움 또는 불행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책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누군가 수억원대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하면 수혜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를 생각하기보다 목돈을 받아든 기쁨만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보험금을 받아든 사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도 보험금이나 받았으면'하는 마음이 든다. 보험금은 왠지 불로소득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이를 노리고 저지르는 '보험범죄'(보험사기)도 점차 증가세다. 보험업계가 이를 심각한 사회범죄로 보지 않는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노력을 적게 들이고도 쉽게 돈을 버는 재테크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 반면 가입자 입장에서는 보험사 측이 한푼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고 비난한다. 마치 보험금을 둘러싼 한판 게임같다.

◆"어떻게 해서든 타내고 보자"

대구 달서경찰서는 지난 17일 일방통행 도로에서 역주행하는 교통법규 위반차량이 많다는 점을 악용,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고의로 7차례나 위반차량과 충돌한 뒤 보험금 4천여만원을 타낸 김모(21)씨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고교생 박모(18)군 등 15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모두 고교 동창 내지 동네 선후배 사이로 달서구 도원동 대곡시장 근처 교통사고 발생지역의 주변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달서경찰서 지능1팀은 지난해 11월 인근 주민들로부터 해당지역이 일방통행으로 지정된 지 얼마 안 돼 역주행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해당지역의 교통사고 기록을 조회하자 7명이 똑같은 수법에 당했음을 알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피해자들이 관련된 사고 자료를 요청했다. 이를 면밀히 분석해 가해자가 110만~800만원을 물어줘 모두 4천여만원에 이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보험사기로 의심이 가는 상황. 달서경찰서는 이들이 싸이월드 친구지간임을 파악한 뒤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보험사기임을 부인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잡아떼던 이들은 경찰이 구체적인 증거를 내밀자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

'보험범죄'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보험금을 수령하거나 실제 손해보다 많은 보험금을 받기 위해, 또는 보험 가입시 실제보다 낮은 보험료를 납입할 목적으로 고의적 또는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유형으로는 ▷사기적인 보험계약의 체결 ▷보험사고의 고의적 유발 ▷보험사고의 위장 및 날조 ▷보험사고 발생시 범죄행위 자행 등이 있다. 경기침체와 취업난은 이러한 보험사기 발생을 부채질했다. 가족들은 물론 10대의 가담도 늘었고, 교통사고 이 외에도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등 자해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잔인해졌다. 수법도 점차 지능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모씨는 2004년 9월 차량 정비작업을 하다 사고로 왼손목을 절단당했다며 34억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가 과학적 수사기법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최씨가 구난차량(레커의 일종)의 와이어 로프를 감아주는 장치에 억지로 손목을 집어넣은 '고의사고'였음이 입증됐다. 배모씨는 2001~2006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모자를 모집한 후 고의로 37건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가로챘다. 무려 92명의 공모자가 동원됐다. 석모씨 등 3명은 평소 반신불수로 지병을 앓던 노숙자 장모씨를 이용, 교통사고로 위장한 다음 보험금을 타냈다가 검거됐다. 강원도 화천의 병원 사무장인 이모씨는 보험설계사 박모씨와 함께 보험가입자 9명의 진단서 등을 가짜로 꾸며 보험금을 받아냈다.

◆사기의심사건 전담반까지 운영

보험사기는 유명인도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이다. 지난 14일에는 가수 '포지션'의 멤버였던 안모씨와 그의 매니저가 보험 사기 혐의로 입건됐다. 안씨는 지난해 3월 여자친구가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내자 보험적용이 되는 매니저가 사고를 낸 것처럼 신고해 보험금 3천400여만원을 받아냈다가 적발됐다. 화재보험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함께 보험사기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특히 방화의 경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서 범인을 못 잡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보험업계는 "보험사기는 보험사의 내부적인 경영손실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 주주, 그리고 모든 소비자와 사회 구성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보험개발원이 추정한 보험사기로 인한 연간 보험금 누수액은 연간 2조2천억원 수준이다. 이는 가구당 14만원에 해당한다. 보험범죄 때문에 계약자들은 이만큼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뜻. 때문에 보험사마다 의심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조사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300여명이 활동 중이며, 이 중 90% 정도는 전직 경찰관 출신이다. 보험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면서 요즘엔 강력계 형사 출신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증거 인멸이 쉬워 사기임을 증명하기 힘든 화재 사건을 위해 국내 14개 보험사 중 4개사는 '화재사건 전담조사팀'까지 둘 정도다. 경찰이 놓친 화재 원인을 찾아내기도 하는 등 보험사기 적발에 공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세계 7위권의 보험 산업 규모로 성장하면서 제도를 악용한 범죄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05년 977건이었던 보험사기는 2006년에는 1천54건, 2007년 2천415건으로 계속 늘어났다. 2005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총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6천268억원이었다. 교통사고를 위장해 자동차 보험금만 노리던 것도 최근 보험상품이 늘어나자 한번에 여러 보험금을 타내려는 추세도 나타났다.

◆"한푼이라도 줄이고 보자"는 보험사

보험사도 보험 고객을 속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입할 때에는 수많은 보장을 강조하면서 정작 보험금을 주게 되는 상황에선 한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김미숙(42)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2007년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책을 통해 그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다. 책에는 '보험금 받기, 병마와의 싸움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내용이 나온다. 보험사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지급을 거부하거나 대뜸 보험 사기라며 배짱소송을 거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험사의 배짱소송에 가입자는 속수무책인 사례도 많다. 고액 보험금 소송의 경우 인지대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으로부터 보험금 지급 판결을 받아내더라도 보험사와 보험금 지급 액수에 대한 소송이 붙을 확률도 높아 이를 받아내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고객의 보험료만 '먹고 튀려는' 보험사들의 행위에는 다양한 장치가 활용된다. 금융감독원이 보험사기를 잡아내기 위해 운용하고 있는 '보험사기 인지 시스템'이 대표적. 한번이라도 보험금을 받은 가입자는 '보험사기 지표' 수치가 올라간다. 이것이 높으면 수사기관에 제보된다. 보험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가입자임에도 이들을 잠재적 사기꾼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는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험사 자문회사의 '자문의뢰 회신문'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치료도 끝나지 않은 환자를 상대로 소송부터 걸어서 장애 정도를 확정하자는 보험사도 있다. 사법부가 이때 판단 기준으로 삼는 '신체장애급수'와 '기왕력'(지금까지 걸렸던 질병이나 외상 등 진찰을 받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병력)이 사고에 미친 기여율을 의사가 감정하는데, 이때 의사와 보험사가 모종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어 문제가 된다. 김미숙 대표는 "보험사고시 사방이 적"이라며 "내가 잘 모르니까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며, 스스로 알아서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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