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구속된 박씨가 아닌 K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했던 '신동아'는 그간의 주장이 오보라 사과하고, '월간조선'은 그 오보가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면서 권모씨라는 인물이 관여돼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더 나올까. 사태의 진짜 쟁점은 논의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게다가 주류로 자처하는 언론사들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신동아'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 오보라는 것에 대해서조차 의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 의문의 핵심은 취재의 기본조차 방기했거나 국민을 의도적으로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칭 미네르바라고 밝힌 K씨의 기고문을 실은 지난해 12월호는 그렇다 쳐도 "검찰이 구속한 박모씨는 가짜이며 진짜는 금융계에 종사하는 7인 그룹"이라고 한 올해 2월호의 인터뷰 기사는 오보가 아닌 허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보란 사실의 진위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실수로 그릇된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오보는 과실에 의한 불가피성이 인정되는 경우 그 책임이 어느 정도 경감되기도 한다. 하지만 허보는 '거짓으로 보도하는' 의도적인 조작 즉 '작문'이라는 점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동아' 2월호의 기사가 더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을 조작하지 말라'는 기사쓰기의 원칙이 있고, 부족한 구성요소만으로 기사를 쓸 경우 '가공의 인물이나 사실을 만들어내는' 조작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개연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어떤 이는 이를 '상업주의 언론의 한계'라고도 한다. 가공된 기사가 상품으로 팔리는 구조 속에서 많은 기사들이 상상력으로 지어내는 작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렇다 보니 오보나 허보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작된 기사로 유명한 사건은 미국의 경우 '워싱턴포스트'의 재닛 쿠크,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USA 투데이'의 잭 켈리, '보스턴 글로브'의 패트리셔 스미스 등이 대표적인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84년 '가정조선' 5월호의 '박종철군의 여자친구 조양의 수기', 1991년 '웅진여성'의 '20대 여성 에이즈 복수극', 1994년 'FEEL'의 '독점 수기 호스티스 출신 서울대 여대생의 충격고백' 등이 있다.
퓰리처상을 받은 재닛 쿠크의 '지미의 세계'라는 르포기사가 자체조사 결과 작문으로 밝혀졌을 때, '워싱턴포스트'는 "실존 인물이 아닌 지미의 이야기는 워싱턴시를 뒤흔들고 추적보도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밝혀낸 자랑스러운 전당인 워싱턴포스트를 모독했다. 그 기사는 영예를 차지했으나 거짓말이다. 독자들에게 엄청난 실수를 해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왜?"로 시작하는 1면 머리기사를 싣고 사죄해야만 했으며,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세계 언론 자유의 영웅'이란 칭호를 들은 독일의 '슈피겔' 창간인 아우크슈타인(Rudolf Augstein)은 한 강연에서 언론이 '최대한의 흥미를 추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무시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슈피겔'의 성공 잣대는 부수의 많음이 아니라 그 위험성에서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있다고 한 바 있다. 지금도 그의 '있는 그대로 써라!'는 시사평론의 제목은 '슈피겔'의 정언적 명령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한다.
'신동아'는 아우크슈타인이 말한 바로 이 위험에 빠져버렸다. 기사 소재의 가공이나 조작, 추정은 언론의 목을 스스로 옥죄는 행위다. 자체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하니 '신동아'는 기사가 어떻게 작성됐는지, 그 K씨가 누구인지, 또 실제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 알았는지 등을 하루속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현재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그 다음은 독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백성에게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는 성인의 말은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이 어떻게 존립할 수 있을까.
이상호(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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