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간간이 봤는데

"확실히 어릴 적보다 겨울이 따뜻해지긴 한 모양이다. 어릴 적 겨울이면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도 자주 봤고, 강이나 하천이 언 모습도 간간히 봤는데. 왠지 변해가는 것이 씁쓸하다." "간간히 이어지는 봄비는 겨울 추위로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여주고 있다."

강이나 하천이 언 모습도 '간간히' 봤다니, '간간히' 이어지는 봄비라니 이게 뭔 말인가. '간간하다'의 부사형인 '간간히'와 부사 '간간이'를 구분하지 못해 나타나는 엉뚱함이다.

형용사 '간간하다'는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재미있다, 입맛 당기게 약간 짠 듯하다, 성품이나 행실 따위가 꼿꼿하고 굳세다,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매우 간절하다 등으로 부사형은 '간간히'다. 반면에 '간간이'는 시간적인 사이를 두고 가끔씩, 또는 공간적인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이란 뜻으로 '간간'이나 '이따금'으로도 쓴다.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간간히'는 '간간이'로 써야 문맥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식은 간간히 조리해야 맛이 난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적소리." "바다 위에 간간이 떠 있는 고깃배들." 등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번번히'와 '번번이'가 있다. 형용사 '번번하다'는 구김살이나 울퉁불퉁한 데가 없이 펀펀하고 번듯하다, 생김새가 음전하고 미끈하다, 물건 따위가 멀끔하여 보기가 괜찮다, 지체가 제법 높다라는 뜻이고, 부사로 '번번히'다. "농지 정리를 하여 논 전체를 번번히 골랐다."로 쓴다. '번번이'는 매 때마다란 뜻으로 "약속을 번번이 어기다." "광역·기초자치단체 담당자들이 지금껏 다문화가정에 대해 직접 지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아왔다."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말에 '-이'와 '-히'를 구분하기가 매우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다. 한글 맞춤법 51항에 "부사의 끝 음절이 분명히 '이'로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고 규정해 놨다. 꼭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지만 '-하다'가 붙는 말은 '-히'로, 그렇지 않은 말은 '-이'로 쓰면 된다. 다만 '깨끗이, 너부죽이, 따뜻이, 뚜렷이, 지긋이, 큼직이, 반듯이'는 '-하다'가 붙는 단어이지만 '-이'로 쓴다.

인생은 긴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기다리고, 젊은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나이 들면 자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근래 들어 신문과 방송 뉴스에서 온통 힘들다는 소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밝고 희망을 주는 소식은 간간이 비칠 뿐이다. 오늘의 힘듦이 내일의 좋은 날을 기다리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