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송나라 농사꾼

송나라에 한 농사꾼이 있었다. 모 심는 철이 다가오자 그도 남들처럼 자기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었다. 며칠이 지나 모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여 농사꾼은 논으로 나갔다. 심은 지 며칠 되지 않은 모는 농사꾼이 생각한 만큼 크게 자라지 않았다. 낙담한 농사꾼이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논의 모는 자기가 심은 것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커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농사꾼은 자기가 심은 모를 한 포기, 한 포기 위로 잡아당겨 다른 논의 모들과 나란히 키를 맞추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농사꾼은 집에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기가 한 일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깜짝 놀라 논으로 달려가 보니 온 논의 모는 이미 말라 있었다.

지난번 살던 아파트 위층에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있었다. 늘 제 덩치만한 가방을 메고도 모자라 가슴에 영어책이나 태권도 도복을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던 그 녀석은 늘 무거운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고는 했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학원 가는구나. 힘들지?" 꼬마가 답했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인절미 먹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막혔다. 무엇이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가슴속에 행복 대신 죽고 싶은 절망감만 가득 채웠을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인재를 키우려면 어릴 적부터 영어를 시켜야 한다고 난리다. 영어를 제대로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아이들이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유네스코가 모국어의 날을 정해 둔 이유일 것이며 제대로 된 글로벌 스탠더드일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서 아이들에게 자기 나라 말보다 남의 나라 말을 더 열심히 가르치는가?

뿌리 없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니 뽑히게 마련이다. 가슴 속에 행복하게 놀아본 추억 하나 없이 절망만 한 가슴 가득 채운 우리 아이들은 바로 뿌리 없는 나무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오래 가는 법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한 번 놀아 보지도 못하고 영어 학습에, 일제 고사에 매달린 채 어린 시절을 마쳐야 한다는 것은 비극을 넘어서 차라리 코미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공부는 때가 있다'고.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말은 '노는 데도 당연히 때가 있음'을 또한 말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린 시절은 놀아야 할 때다. 하늘과 땅과 온갖 창조물과 더불어 춤추며 뛰고 놀아야 할 때다. 아이들은 그때 놀아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을 지금처럼 가르치면 꿈과 행복 대신 알파벳과 절망만 한 가슴 가득 찬, 송나라 농사꾼이 당겨 올린 말라버린 모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참으로 두렵다.

박진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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