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시집와 살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이 12만명을 넘어섰고 우리나라 남성들의 국제결혼 비율이 11%에 달하는 등 '다문화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편견의 굴레에서 홀로 우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다. 국적 취득부터 이혼 후까지 결혼이주여성에게 불평등한 법·제도와 함께 성폭행을 일삼는 불법 브로커 등 '어글리 코리안'이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악덕 브로커에 울고
지난해 10월 대구에 온 중국인 결혼이주여성 K(18)씨의 코리안 드림은 두달도 안 돼 산산조각났다. 같은 해 5월 중국에서 한국인 남편(37)과 서류상 결혼한 직후 불법 한국인 브로커가 운영하는 '합숙소'를 찾은 게 화근이었다. 브로커는 한국 생활에 대한 정보를 합숙소에서 미리 배워가는 게 좋다며 K씨를 유인해 성폭행했다. 시댁 식구들에게 이 사실을 들킨 K씨는 3개월 전 쫓겨나 현재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구에 온 필리핀 여성 J(19)씨도 파경 위기다. J씨는 지난해 여름 남편과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입국 전 한글 교육을 시켜 준다는 한국인 브로커의 꼬임에 빠져 소개비를 포함해 500만원을 지불하고 합숙소에 들어갔지만, 교육은커녕 몸만 버렸다. 임신 4개월인 J씨는 현재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국제결혼중개업체 한 관계자는 "일부 불법 브로커들은 결혼이주여성에게 노숙자, 정신지체 장애인 등 생활능력이 없는 한국 사람을 '돈 많은 남성' 등으로 속여 혼인시키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을 돕고 있는 '민들레봉사단' 신희숙 단장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에선 국제결혼 후 한국에서 추방당한 여성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까지 생길 정도로 한국에 대해 나쁜 이미지가 퍼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냉정한 法에 울고
지난 15일 서울가정법원이 베트남 출신 투하(가명·26)씨가 전 남편(53)을 상대로 낸 양육자변경심판 청구를 기각하자, 인터넷 포털에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투하씨는 2003년 8월 이혼남인 남편과 결혼해 딸 2명을 낳았으나 남편은 둘째 딸이 태어난 지 일주일 뒤 그와 이혼하고 전 부인과 재결합했다. 투하씨는 아이들을 직접 키우겠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양육 능력 등을 고려할 때 아버지가 더 적절하다"며 기각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재판부가 베트남 신부를 씨받이로 인정한 창피한 판결"이라고 비난했고, "미국 여자였으면 여자가 딸을 데려갔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들을 옥죄는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결혼한 지 2년이 안 된 이주여성의 외국인등록증 갱신에는 남편의 보증이 필요하다. 남편의 폭력과 학대가 있어도 2년을 버텨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으며 국적 취득 전에 이혼한 이주여성은 가정폭력 등 이혼귀책사유가 상대방에게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귀화 신청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이혼 등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들을 위해 강제 퇴거를 유예하거나 소송 기간 동안의 체류와 경제활동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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