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세 잔의 차

"세 잔의 차를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 된다"

▨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권영주 옮김/이레 펴냄

그레그 모텐슨은 누이 동생 크리스타를 사랑했다. 세살이던 동생은 부모님이 탄자니아에서 선교사와 교사로 일할 때 뇌막염에 걸려 후유증과 불편 속에 살았다. 동생보다 열두살 위였던 그레그는 동생의 보호자였다. 그는 어디에 있든 일년에 한달 이상 동생을 불러 함께 지냈으며, 어디든 동생과 함께 다녔다.

여동생은 스물세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발작을 일으키며 죽었다. 산악인이었던 그레그는 동생을 추모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산악인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산으로 불리는 K2에 올라 여동생의 목걸이를 갖다 놓을 생각이었다. 그레그는 서른다섯살의 건장한 젊은이었으며, 열한살 때 킬리만자로에 올랐고, 요세미티의 험준한 화강암 암벽에서 등반을 익혔다. 이미 히밀라야의 여러 산들을 대여섯 차례 오른 경험도 있었다. 그는 용기와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등정은 실패로 끝났고 그는 '죽음을 부르는 산'에서 조난당했다.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코르페 사람들이 그를 구조했다.

코르페 사람들은 한달 넘게 그레그를 보살폈다. 건강을 회복한 그레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없지만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불안한 영혼이 부럽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들보다 우리가 더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으면 합니다. 당신들이 가진 것 중에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가장 바라는 것이 배움입니다."

코르페 마을 촌장이자 지은이 삶의 멘토였던 하지 알리는 말했다.

"이 코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난 이걸 못 읽네. 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어. 이게 내 평생 가장 큰 슬픔이라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런 기분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거야. 그 아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교육을 받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어."

"제가 학교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꼭 학교를 짓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그레그 모텐슨이 답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그레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돈을 벌었다. 사람들이 꺼리는 병원 야간 근무를 자처했고, 집세를 아끼기 위해 중고차 안에서 잠을 잤다. 정치인, 사업가, 배우 등 유명한 사람 580명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과 함께 후원금을 보내온 사람은 미국 NBC 방송의 톰 브로커뿐이었다.

그레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을 팔고 기부금을 모았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학생들로부터 1센트씩 기부금을 모아 보탰다. 그렇게 돈을 모아 히말라야로 돌아간 그레그는 학교를 짓는데 필요한 목재와 자재를 싣고 코르페 마을로 향했다.

학교 건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다리가 필요했고, 학교 건설을 마뜩지 않게 여기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탈레반에 납치돼 8일간 감금되기도 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에 극렬히 항의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만큼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산간 마을 사람들의 열의와 그레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레그는 코르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히말라야 산간에 78개의 학교를 지었다. 이 학교들을 통해 3만여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았다.

'세 잔의 차'는 히말라야 산간 마을 사람들과 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기적 같은 학교 짓기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출간 후 82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타임지의 올해의 아시아책에 선정됐고, 2007년 일본의 기리야마상을 수상했다. 29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이 책은 '한 선량한 미국인이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선물했다'는 식의 계몽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레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보답하려 했고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기를 원했다. '세 잔의 차'는 학교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타인을, 문명이 다른 문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코르페의 촌장 하지 알리는 그레그에게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라"고 말했다.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이다.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다."

서두르지 말고 관계 맺기를 통해 하나씩 풀고 맺으라는 충고였다. 학교를 짓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이해와 소통인 것이다. 그레그는 하지 알리의 가르침을 받았고 미국식으로 용건부터 이야기하는 화법이 아니라 차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하는 발티족의 대화법을 익혔다. 덕분에 그는 계곡과 계곡 너머 천천히 학교를 지어나갈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에 엄청난 원조와 함께 100억달러 이상의 군사 지원을 했으나 테러리스트 세력은 숙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그는 이 돈의 1만분의 1도 쓰지 않고 그들과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다. 토마호크 미사일 한 기의 값은 8만4천달러, 이 돈은 20곳 이상의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수만 명의 아이들이 30년 동안 균형 잡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액수다. '세 잔의 차'는 이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484쪽, 1만3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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