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별빛들을 쓰다」/ 오태환

필경사가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철필로 원지 위에 글씨를 쓰듯이 별빛들을 쓰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별빛들은 이슬처럼 해쓱하도록 저무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묵란 잎새처럼 쳐 있는 것도 또는 그 아린 냄새처럼 닥나무 닥지에 배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어린 갈매빛 갈매빛 계곡 물소리로 반짝반짝 흐르는 것도 아니고 도장처럼 붉게 찍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별빛들은 반물모시 옷고름처럼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여리여리 눈부셔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수평선 위에 뜬 흰 섬들을 바라보듯이 쳐다봐지지도 않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국민학교 때 연필을 깎아 치자 열매빛 재활용지가 찢어지도록 꼭꼭 눌러 삐뚤빼뚤 글씨를 쓰듯이 그냥 별빛들을 아프게, 쓸 수밖에 없음을 지금 알겠다

내가 늦은 소주에 푸르게 취해 그녀를 아프게 아프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저 녹청 기왓장 위 별빛들을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지금 알겠다

오태환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별빛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필경사가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철필로 원지 위에 글씨를 쓰듯이 별빛들'을 쓴다는 것은 별빛을 읽는 행위를 뛰어넘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별빛들을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게 아니라, 아프게 쓰는 것이다, 라는 저 별빛의 진화야말로 시인이 오래도록 담금질한 빛이다. 별빛을 쓰는 것이야말로 별빛이 어떻게 쓸쓸하고 별빛이 어떻게 아리는지, 별빛이 어떻게 아픈지 별빛에 다가가는 물질에의 체험이다. 그게 너무 절절하여 별빛처럼 쓰러지고 싶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이 앙금처럼 자꾸 고인다. 모국어의 슬픔이 눈물없이 오래 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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