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밥상과 대문은

시골로 이사 오면서 물건을 많이 버렸다. 너무 큰 가구나 쌓아둘 수 없는 책과 옷 등을 정리한 것이다. 살림이 단출해지니 홀가분했지만 식탁이 없어지니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더운 여름날 마루에다 밥상을 차리면 마당에 핀 꽃들과 함께 향연을 벌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마루에 밥상을 차릴 때는 언제나 대문과 마주 보지 않도록 조심을 했다. 밥상을 대문과 마주 보고 밥을 먹으면 복이 나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까닭도 모른 채 시골집이니 옛날 미신은 지키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그렇게 했는데 사소한 경험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오던 이웃 사람이 숟가락을 든 나랑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나가 버렸다. 들어오던 사람이 그냥 나간 것이 미안해서 나는 뒤따라갔지만 모퉁이를 돌아가는 사람은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그의 집으로 달아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이 대문을 나가기 전에 불러 밥상 앞에 앉히고 함께 밥을 먹자고 청해야 옳은 일이었다. 차츰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시골 인심을 알게 되었다. 시골 사람들은 아직도 누군가가 끼니때에 찾아오면 반드시 함께 수저를 들게 한다. 하물며 밥상을 내놓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손을 그냥 보내겠는가. 그것은 어제오늘 새로 생긴 인심이 아니라 긴 세월 전해 내려온 끈끈한 정이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넘기며 살아온 백성들이 인심대로 나누며 살기는 어려웠다.

밥상이 대문과 마주 보고 있으면 복 나간다는 미신은, 한밤중만 아니면 항상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았던 시절에 별안간 마당에 뛰어든 손님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미리 막아준 예방책이다. 대문 앞을 지나가는 이웃과 눈만 마주쳐도 모른 척하지 못한 인정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지켜준 말이다. 그 말은 '내 집을 찾는 모든 이를 예수님처럼 대하라'고 한 성경보다 너그럽고 인간적이다. 어쩌면 그토록 벅찬 사랑을 품으라고 하는가. 그 사랑을 실천하려면 이웃이 어렵고 부담일 것이다. 차라리 식구끼리 대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라는 말이 낫지 않을까. 대한(大韓)사람들은, 등 돌린 주인에게도 말을 건네며 들어오는 배고픈 길손까지 몰라라 하는 '놀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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