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와 한일강제병탄, 그리고 고종황제의 승하 등 잇단 국난에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동의 퇴계 후손 이명우(1872~1920) 지사와 남편의 충절을 따라 '의부(義婦)의 도리'를 결행했던 권성(1868~1920)씨의 유서가 3·1절 90주년을 앞두고 처음 공개됐다.
이 부부의 순국 사실은 그동안 관련 자료가 없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25일 손자인 이일환(76·대구 동구 불로동·사진)씨가 간직하고 있던 '비통사'와 '유계' 등 부부가 남긴 자료를 공개하면서 의로운 죽음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부부가 같은 날 동시에 자결한 사례는 전국 70여명의 순국지사 가운데 유일하다. 또 여성이 자결하고 한글 유서를 남긴 것도 처음이다. 안동지역에는 10명의 순국지사들이 있으나 이들 부부만이 애국지사 포상에서 누락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이명우·권성 부부가 자결 후 장례를 치르는 과정의 각종 자료와 유서로 큰아들 이동희씨가 간직해오다 한국전쟁을 앞두고 정리해 책으로 만든 '성제옹유고'(誠濟翁遺稿), 제문을 기록한 '만제록'(輓祭錄), 부조록 등이다.
퇴계 이황의 14세손인 이명우 지사는 안동 예안면 부포에서 태어나 마지막 과거시험을 통해 성균관 진사로 있다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강제병탄을 거치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1912년 가족을 이끌고 속리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칩거하며 부친상과 모친상을 치른 후 1918년 12월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음독 자결했다. 그리고 이날 부인 권성씨도 함께 자결함으로써 남편을 뒤따랐다.
이명우 지사는 자결하면서 '비통사'(悲痛辭)와 '분사'(憤辭) '경고'(警告) '유계'(遺戒)를 남겼다. 부인도 4통의 한글 유서를 남겼다.
이 지사가 남긴 비통사와 유계 등에는 나라를 잃고 10여년 동안 울분과 치욕을 참을 길이 없어 충의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후손들에게는 외세의 침략과 왜적에 대한 경계와 백성과 신하된 도리를 다할 것을 경계·권고하고 있다.
권성씨도 유서에서 동희·동묵·동섭 등 아들 삼형제와 두 며느리, 숙부와 시숙 등에게 "부부와 군신의 도리가 같은데 남편이 충의의 길을 떠나니 부부의 도리를 따라 함께 자결한다"고 밝혔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은 "부부가 함께 자결 순국한 전국 유일의 사례라는 점에서 독립운동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한글 유서 자체의 국문학적 사료 가치 또한 크다"고 말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이날 공개된 자료를 근거로 이들 부부에 대한 애국지사 포상을 신청해 놓고 있으며, 앞으로 부부 지사의 행적을 조사해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길 계획이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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