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조명과 환경에 어울리는 설치 조각

박충흠 조각전 / ~4.26 / 시안미술관

▲ 박충흠 作
▲ 박충흠 作

조각가가 빛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원래 조형 예술에서 명암은 필연적인 고려 대상이다. 회화의 발달 단계가 환영(illusion)이라고 하는 자연스런 효과에 이르게 된 것도 사물의 형태나 색채의 묘사가 결국은 사물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재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상주의에 와서는 빛의 산란이나 광학에 대한 과학적인 관심으로까지 비약하기도 했지만, 시각 현상에 대한 현대 미술의 감각적인 집착은 물질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갈 때 말고는 중단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빛의 중요성은 중력을 취급해야 하는 조각에서 더 먼저 깨닫게 된다. 공간 속에 놓이는 입체적인 형상은 빛에 의해 그 형태의 윤곽이 드러나고 표정이나 표면의 인상이 크게 좌우되므로 조명의 비중은 훨씬 더 높다. 특히 작품이 놓이는 위치나 관객의 시점이 정해지는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광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각은 그래서 일찍부터 흡수나 반사 또는 투과 등, 빛과 구조물 간의 관계를 탐구하여 구성의 일부로 수용했다. 조각가의 그런 세심한 고려가 적용된 작품에서 우리는 광선이 연출하는 다양한 변주들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충흠 조각전도 형태와 양감을 중시하는 조형물이 조명과 어울려 연출하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장관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미술관이 지닌 공간의 개성적인 성격과 더불어 잠시 명상적인 도취에 잠겨볼 수 있는 시간 속으로 이끌린다. 어렴풋이 멀리 퍼져나가는 랜턴 불빛의 수놓은 듯 현란한 명암의 무늬에 감각이 홀려보면 'The gleam of lanterns -물질로부터 비물질화로'라는 전시 주제가 의도하는 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빛을 중요한 요소로 이용하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예 한 줄기의 빛도 없는 깜깜한 어둠의 공간을 제시하는 작가도 있다. 24시간 불빛이 사라지지 않은 도회의 생활 공간에서 진정한 어둠이란 것을 잊어버린 채 사는 현대인에게 어둠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켜 주는 이색적인 작품을 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어둠 속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몇 가닥 불빛만으로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고요한 느낌을 자아내 정신을 고양시키는 작품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형광 튜브의 설치로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는 댄 플라빈이나 브루스 나우만 등의 세계와는 또 다른 빛과의 결합을 이 작가에서 본다.

인내심을 가지고 장고한 시간의 노동을 투자해서 완성해내는 누적과 집적의 결과물로서의 점진적인 작업. 그것이 주변의 자연 환경과 어울리려는 독특한 모습은 벽에 걸리는 그림과 바닥에 고정되던 조각이 지닌 공간적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다양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전통적인 관조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설치 조형물로서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려는 장점들을 안고 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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