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40)이 데뷔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대중들의 망막에는 여전히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부르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던 잔상이 남아있을 터. 그러나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그녀도 꾸준히 변화해왔다.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앞선 수준의 음악적 결과물을 내놓았고, 음반 2장은 모 언론사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올랐다. 이름만 보고 음반을 집어드는 마니아들도 적지 않고, 여권이 3권일 정도로 전세계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2권의 여행기와 시집, 아트북과 사진, 미술 등 다양한 창작물들은 그녀에게 가수이기보다 '아티스트' '음악작가'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게 한다.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지난 1월. 하지만 책을 쓰는 중이라 외부 활동이 곤란하다며 원고가 마무리된 뒤에 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음악작업이나 집필을 할 때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흥적으로 작품을 내놓기보다는 꼼꼼하게 분석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집중해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 지난 20일 서울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져대는 기자에게 "한숨 좀 돌리고 하자"며 커피부터 주문했다. 넘치지 않는 친절과 정제된 대답. 불쾌한 질문에는 "다른 분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더라"며 에둘러 표현하는 그녀는 꽤나 다가서기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내 음악은 마음의 여행
-지금 쓰는 런던 여행기는 어떤 내용인가요?
"원고는 마무리가 됐는데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이 5월로 미뤄졌어요. 여행기들이 보통 사적인 주제나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저는 되도록 꾸미지 않고, 제 스타일대로 풀어냈어요. 7년 만에 찾은 런던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달라보였는지를 주로 썼죠. 제 음악을 들었을 때도 마음이 여행을 떠난 것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그래서 여행은 정신적으로 중요한 테마죠. 전 책을 한 권 읽는 것보다 여행을 한번 갔다오는 것이 훨씬 더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여행예찬론자예요."
-이상은씨를 두고 '보헤미안' '여성 음유시인' '아티스트' 등 여러 수식어가 붙는데 뭘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모르겠어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저 제 길을 갈 뿐이고 뭐라 이름 지어지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제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거의 차단을 해요."
◆음악을 미술처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유롭게 길렀다면서요?
"자유분방하게 키워주셨어요.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면서 초등학생 때는 마음껏 뛰어놀게 하셨어요. 학교만 갔다오면 책가방 던져놓고 저녁 때까지 뛰어놀았던 기억이 나요. 그런 기억 때문에 지금도 자유로운 것이 좋고 속박받는 것도 싫어하게 됐어요.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제 직업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본인의 인생을 바꾼 음악이 있나요?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집에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은 거예요.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팝송처럼 멋있는 음악이 우리나라에도 나온다'며 흥분을 했어요. 갑자기 가슴이 막 뜨거워지면서 '나도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진로를 바꾼 거예요. 또 존 레논의 음악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 사람의 철학이나 사회활동에도 한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알게 모르게 음악 한 곡이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모범생 콤플렉스 같은 게 있습니까?
"예술가라며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도, 세속적으로 인기만 바라보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해요. 깨끗하게 잘 가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살면서 가장 비뚠 짓이 뭐였어요?) '담다디'로 데뷔했을 때가 제일 비뚤어졌을 거예요. 부모님이 절대로 노래하지 말라셨는데도 강변가요제에 나갔으니까.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지금은 제 음악과 방향이 괜찮다고 하세요."
-음악생활 21년째를 맞았는데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고민을 한 적도 있었죠. 사실 일본에 머물면서 음악을 그만두고 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함께 음악을 하던 어른들이 '넌 음악을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만류를 했어요. 그래서 참고 계속했더니 되게 재밌더라고요. 앉아서 뭘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나 레코딩 작업 과정이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의 말은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13장의 앨범을 냈는데 가장 전환점이 된 앨범은 뭔가요?
"6집 '공무도하가'겠죠. 일본에서 새로운 팀을 만나서 변화가 컸어요. 제작비도 많이 들었고,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음반을 시도했다고 생각해요. '공무도하가'를 낸 뒤에는 소박한 것이 저와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소 대중적인 음반을 만들게 됐어요. 엘리트주의적인 음악보다는 담백하면서도 수준 높은 음악을 좋아하니까요. '공무도하가'를 칭찬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평가에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요. 칭찬을 받으면 교만해질 수 있고, 비난에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고요. 가까운 지인들이나 가족, 괜찮은 평론가의 얘기만 듣고,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되도록 귀를 닫고 지내요. 지금까지 꿋꿋하게 제 음악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세간의 말들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음악. 치유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래로써 삶 속에는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요. 제 음악이 좀 어렵다는 분들도 있지만 충분히 향기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제 음악을 듣고 마음이 아팠거나 절망을 느끼던 사람들의 상처가 나았으면, 마음의 치료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멜로디와 가사 중에 어떤 걸 더 중요하게 여기세요?
"가사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전달하려는 내용이 있어야 노래가 성립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사가 안 써지거나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 가장 두려워요. 그래서 제 우물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평소에 갈고 닦아요. 영화도 열심히 보고,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는 거죠. 좋은 주제를 잡고 시대성과 트렌드를 공부한 다음에 음반을 내는 스타일이에요."
◆독신주의자?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
-자신의 작품이 음악성에 비해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환경이 좋지 않아 일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유혹이에요. 책임을 바깥에 전가하고 싶어하는 마음인데 그것조차 잊어버리는 게 좋아요.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그냥 이 길로 죽을 때까지 걸어갈거야'라고 마음을 먹고나니까 오히려 상황이 좋아지더라고요. 또 대중적으로 사랑받느냐보다는 제 스스로 행복한 음악을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는 건 금방 끝나지만 제가 만족을 하면 다음을 위해 힘을 낼 수 있거든요. 제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 남의 말 안 듣고 끝을 보는 것 같아요.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는 뚝심이 있다고 할까?"
-카메라 앞에 선 이상은씨의 표정은 다소 낯설고 어색해 보이는데?
"제가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또 작품 위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훈련이 잘 돼 있지도 않고요. 낯가림이 심해서 사진을 찍으면 어색해요.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말 잘 웃겨요. 배꼽이 빠지게 웃기는데 모르는 사람이나 대중들 앞에서는 되게 냉정해 보이죠. 사실 성격상 스타가 되기에는 맞지 않은 편이죠."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매니저를 불렀다. "나 되게 웃기지? 친한 사람들한테?" 돌아오는 대답. "어, 엄청 웃겨요.")
-독신주의자인가요?
"독신주의자? 그게 뭐예요? 하하. (결혼은 왜 안하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직 인연이 안 나타났죠. 평생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어른이 되니까 많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이 땅에서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아직 이상은씨를 두고 '담다디'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이해되지 않는 건 사람은 성장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활짝 핀 꽃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이후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19세 때 '담다디'가 제게 좋은 노래였다면 그 이후에는 '공무도하가'나 '삶은 여행'처럼 다른 노래들을 내며 성장해온 거잖아요. 경험과 나이, 작품을 동시에 두고 보면 금방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장사가 됐었던 열아홉살 때 얘기 외에는 다 무시해요. 그건 그 사람의 작품에 대해서 전혀 존중하지 않는 거죠."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 것 없어요. 지금까지 잘 온 것 같아요. 하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가질 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비틀스와 롤링스톤즈의 레코드사인 영국의 버진 레코드 일본지사와 계약을 해서 런던에서 레코딩을 했는데 그 음반이 제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레코드사에서는 많이 팔리는 음악을 원했고, 저는 핑크 플로이드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지만, 좋은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잘 싸우지 못했어요. 예술성과 음악성을 지켰어야 했는데, 포기하고 나니 도리어 그 회사와 관계가 끊어져 버렸어요. 그 이후에는 어떤 유혹이 오더라도 음악성을 지켜야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앞으로 계획은?
"5월에 런던 여행기가 나올 것이고, 조만간 일본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아마 올봄부터 레코딩에 들어가면 가을쯤에는 새 앨범이 나올 것 같아요.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좋은 음악을 해야겠죠. 10년 후에는 아마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아요. "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이상은은?=1970년 서울 출생.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녀는 2집을 낸 뒤 훌쩍 한국을 떠났다. 이후 주로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고 1995년 6집 '공무도하가'로 창조력이 넘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3장의 정규앨범 외에도 다수의 싱글, OST 음반을 발표했다. 일본과 영국, 미국 등지를 오가며 예술성 넘치는 음악과 화가, 시인, 여행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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