鳶(연)날리기는 우리 조상들이 正初(정초)에 가장 즐겼던 놀이다. 40대 이상이라면 하늘 높이 연을 띄우느라 손발 시린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던 기억 한 자락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언제부터 연을 띄웠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1천300년도 더 이전에 연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三國史記(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큰 별이 떨어지자 여왕이 패할 징조라며 백성들이 동요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큰 연을 만들어 불을 붙인 뒤 하늘로 날려 보내 민심을 수습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고려말 최영 장군은 탐라(제주도)의 몽골인 목호의 난을 정벌하면서 불덩이를 매단 연을 성 안으로 날려 보내 공략했다.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 및 작전지시 수단으로 연을 활용했다는 것 등으로 미뤄 연이 주로 군사적인 목적에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민간으로 대중화된 것은 18세기로 짐작된다. 특히 영조대왕이 연날리기를 좋아해 이를 장려했고 민중에 널리 보급됐다는 것이다.
연날리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긴 가장 대표적인 겨울철 놀이이지만 연을 날리는 시기는 섣달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로 한정돼 있었다. 그 정점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이날 연에 '厄'(액) 한 자를 쓰거나 '送厄'(송액), 또는 '送厄迎福'(송액영복)이란 글자와 함께 자신의 이름, 생년월일시 등을 써서 띄운 뒤 얼레에 감겨있는 실을 모두 풀어 날려 보냈던 것이다. 農閑期(농한기)에 연을 날리며 놀다가 정월 보름날 연을 날려 보낸 뒤 농사준비에 들어가, 액막이라는 주술적 의미와 차질 없이 영농에 들어가는 현실적 실속을 두루 차렸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에는 알맞은 공간과 바람만 있으면 언제나 연을 날리며 즐기고 있으니 경제생활의 변화에 따른 현대적 변용이다.
방패연, 가오리연에 나비연, 거북선연, 봉황연, 박쥐연, 학연, 매연 등이 전래의 연이라면 온갖 창작연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는 것도 현대 풍속이다.
어제 경북 의성 봉양에서는 전국연날리기대회가 열렸다. 面(면) 단위 행사이긴 하지만 연날리기대회로는 경북지역에서 유일한 전국 규모 대회다. 올해로 32회를 맞으니 年輪(연륜)도 만만찮게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경제위기가 몰고 온 모든 액을 연에 날려 멀리멀리 보냈으리라 믿는다.
이상훈 북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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