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사무치는 그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다 알 수 없겠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한 번만이라도 되새겨줬으면 합니다."
생존 애국지사인 이갑상(85·대구 서구 내당동)옹은 "3·1절 90주년을 지냈지만 요즘 세대들은 교과서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 일제 치하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옹은 1944년 중국 구강지구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징병 1기생(1944년 9월)으로 일본군에 끌려갔지만 탈출을 감행, 인근에 있던 중국군 제17사단과 함께 양쯔장에서 일본 물자수송선을 침몰시키는 등의 항일전쟁을 치렀다. 결국 이옹은 1945년 일본 헌병에게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 중 광복을 맞이했다. 이 옹의 모습은 현재 고교생들이 사용 중인 근현대사 교과서 표지에도 등장한다. 광복을 맞아 마포형무소 출옥 환영회 모습 속에 이 옹의 모습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동료 중에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투사가 있다"며 "과거 반공법과 연좌제 등의 피해를 입어 인정받지 못했는데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하루빨리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장병하(81·달서구 대곡동)옹은 1943년 8월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이라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1945년 3월 10일 안동 시내 일본 기관과 요인 습격을 위한 거사를 계획했다가 거사 당일 일제에 의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모두 63명의 학생들이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으로 옥사하거나 정신이상이 된 동료도 적잖았다. 장 옹은 "독립운동에 몸 바친 애국지사들이 수백만에 달하고, 3·1운동을 전개했던 인원만도 220만명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보훈청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1만여명에 불과하다"며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이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권중혁(88·달서구 진천동)옹은 "일본의 독도 도발이나 역사 망언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낀다"며 "젊은 세대들이 무조건적인 반일감정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역사를 바로 알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옹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재학 중이던 1944년 1월 일본군에 징병됐지만 6명의 동지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가 체포돼 일본 기타규슈의 고쿠라 육군형무소에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복역했다.
그 외에도 대구경북 지역에는 일진회라는 비밀결사활동을 전개했던 정광식(86·경북 고령군)옹과, 흑색청년자유연합회라는 무정부주의 조직을 결성해 활동했던 김중문(96·경북 경산시)옹,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권준호(85·동구 율하동)옹,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던 이종호(87·수성구 시지동)옹 등 9명의 애국지사가 생존해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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