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반죽이 좋네. 굽기만 해도 감칠맛이 나겠는데요." "재료를 미리 잘 준비해 줘서 그런거죠."
2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의 한 건물 3층 작업장은 고소한 빵냄새로 가득했다. 빵을 만드는 이들은 분주한 작업 중에도 차분하게 손을 움직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마치면 동료의 작업을 세심하게 살폈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이어졌다. 빵 만들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함께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이들은 모두 정신장애인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대인기피나 자신감 결여 등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불황의 그늘이 깊지만 모두가 한숨만 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정신장애인 8명이 일하는 '행복한 빵' 작업장에서는 불경기라는 푸념을 들을 수 없다. 이들은 올해 말 자신들의 빵 공장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에 하루하루 열정을 쏟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빵을 만들기 전까지 일다운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기에 빵 만드는 일의 의미가 남달랐다.
작업장에 혼자 오지 못할 정도의 장애가 있던 이들은 처음엔 "몸이 약한 내가 뭘 하겠어." "'난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 바깥 출입도 제대로 못했는데…."라는 자조감에 빠져 있었다. 자신감이 없던 이들이다 보니 빵은 군데군데 설익은 밀가루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다. 정신장애로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 했던 배재현(36)씨는 "가장 오래 해본 일이 1주일이었는데 지금은 이 일을 4년째 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나올 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그는 "생활비에 보태기엔 턱없이 적은 월급이지만 부모님께 드릴 수 있어 뿌듯하다"며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혼자 빵가게를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받은 터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 9월부터였다. 정신장애인 복지기관인 베네스트재단의 자활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시행착오가 많았다. 빵을 팔아 받은 첫 수입은 고작 4만5천원.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로를 격려하며 빵을 만든 지 2년 만에 빵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맛있다'는 입소문은 이들의 작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급여도 오르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월 10만원을 가져갔지만 지난해에는 18만원으로 뛰었다. 경력 3년차 박선주(가명·34·여)씨는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 기술을 익혀 땀흘려 돈을 벌었을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겠느냐"며 "그 돈으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고 말했다.
지금은 병원이나 민간단체 등에 고정적으로 납품하는 어엿한 사업체로 성장했다. 덕분에 보건복지가족부의 '기능보강 사업'으로 선정돼 지난달 5억2천여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공동작업장을 확충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이제 가족, 학생들에게 매장을 개방해 자신들의 솜씨를 자랑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제빵 실력을 기르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김종식(41)씨는 "불경기라고 하지만 부지런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라며 "우리는 지금도 기술을 쌓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더 나은 평가를 얻을 것으로 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행복한 빵' 작업장을 지도하고 있는 김민혜(29·여) 사회복지사는 "빵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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