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왜 버려? 고쳐쓰자" 수선집은 '불황 속 호황'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은데 고쳐 써야죠."

직장인 김선동(34·수성구 만촌동)씨는 지난 주말 너덜해져 오랫동안 입지 않던 봄 재킷을 백화점 수선코너에 맡겼다. 양쪽 소매가 닳았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김씨는 "예전 같으면 버렸겠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새 옷 사는 게 부담스러워 수선비 몇천원을 주고 고쳤더니 마치 새 옷 같다"고 했다.

불경기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아껴쓰고 고쳐쓰는 'IMF형 소비 패턴'이 재현되고 있다. 가정마다 신상품 구매를 줄이는 대신, 낡은 옷이나 신발을 수선해 한푼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08년도 3분기 가계지출 중 의류 및 신발 소비지출은 9만2천456원으로, 2007년 4분기에 비해 4만1천327원(-30.9%)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수선실은 보통 매장에서 새로 구입한 옷을 수선하는 일감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헌 옷' 수선 요구가 부쩍 늘었다. 헌 옷의 치수나 일부 디자인을 고쳐 입는 알뜰소비족이 늘어난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남성의류 소병훈 담당은 "보통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옷들은 몸에 맞게 허리나 어깨 품 등 치수를 고치는 경우가 많고 유행이 지나거나 낡은 옷은 아예 디자인을 고쳐 달라고 요구한다"며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두세배 늘었다"고 했다. 겨울 코트는 유행이 바뀌고 체형이 변해 입지 못하는 것을 수선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체를 손보는데 대략 10만원 정도 든다.

백화점 관계자는 "새 옷 사는 게 부담스럽다 보니 몇년간 옷장 속에 보관해오던 옷을 고쳐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바지부터 와이셔츠, 정장, 코트까지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한번에 10여벌씩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구두 수선집도 북적대고 있다. 불경기 탓에 구두를 닦는 사람은 크게 줄었지만, 굽이나 밑창을 갈거나 터진 곳을 꿰매 달라는 주문은 크게 늘었다. 대구 중구의 구두수선가게 주인 김모(61)씨는 "고가브랜드 신발부터 저렴한 신발에 이르기까지 수선을 맡기는 고객층이 2,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백화점 구두 브랜드 매장에도 구두 굽 등을 갈기 위해 찾는 고객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알뜰 바람이 불면서 아파트 단지, 주택가에 있는 헌옷 수거함은 썰렁해졌다.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에는 헌옷이나 구두, 핸드백 등의 수거물량이 1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 줄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는 멀쩡한 옷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버리는 옷 자체가 적은데다 그나마 너무 낡아 도저히 입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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