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태생의 세르게이 엘리세프(1889~1975)는 서구인 최초의 일본학 연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그는 지식에 대한 열정이 넘친 인물이었다. 베를린대에서 중국어'일본어를 배웠고 19세 때 서양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도쿄제국대에 입학할 만큼 수재였다.
엘리세프의 스승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문학자이자 소설가인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였다. 하지만 일본을 연구하는 데 있어 그에게 가장 뛰어난 스승은 책이었다. 그는 수많은 책들을 섭렵했다. 그는 도쿄 간다(神田) 서점가를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수많은 책들을 구입해 읽었다. 2차대전 말기 엘리세프가 간다 서점가가 있는 진보쵸(神保町) 일대를 폭격하지 말 것을 맥아더에게 청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도쿄 치요다구의 간다 지역은 현재도 고서점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진보쵸를 중심으로 야스쿠니'스즈란거리 일대에 고서점들이 밀집해 있다. 1881년 개업한 산세이도(三省堂)나 이와나미(岩波) 같은 유명한 출판사도 이곳 터줏대감이다. 한창때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양 최대의 고서점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간다 고서점거리는 도쿄의 명물 중 하나다. 현재 간다의 고서점들이 보유한 재고 도서만도 300만 종, 약 1천만 부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헌책 축제'에는 수십만 명이 몰릴 정도다.
반면 6'25 직후 대구시청 인근에 형성되면서 시작된 국내 헌책방가의 역사는 80년대 중반 대형 신간서점들이 등장하면서 지금은 거의 잊혀졌다. 서울 청계천이나 부산 보수동, 광주 계림동 헌책방 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대구에만도 150여 개의 고서점이 성업 중이었지만 이제는 겨우 10여 곳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절판되거나 구하기 어려운 헌책을 찾으려고 이집 저집 찾아 헤매던 추억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제난으로 인터넷 서점들이 중고책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헌책방이 인터넷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신간도서 가격이 장난이 아닌데다 불황 탓에 헌책을 찾는 이가 늘면서 온라인 중고서점들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현상이다. 온라인 헌책방이 새로운 문화적 전통으로 잘 정착돼 헌책 문화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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