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빙이화'는 1940년 일본제국 말기에서부터 해방과 한국 전쟁 등 격동기를 살아온 봉숙이라는 한 대구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 비교적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을 받은 봉숙은 개혁적인 심성과 열의를 가지고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세월의 관습과 제도, 가정의 속박은 그녀가 능력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소설은 거대한 시대의 장벽, 사회의 장벽 앞에 무너진 한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갔던 민초들의 불우한 삶을 그리고 있다.
연전연승을 거두던 일본 제국에 암운이 짙어지면서 농사짓고 빨래하던 민초들은 군대로, 정신대로 잡혀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거래나 설득을 넘어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 그렇게 끌려간 조선인들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지만 일본은 패망했고 조선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해방 조국도 가난한 민초들에게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격동기의 가파른 날 위에서 하루하루 연명해야 했던 사람들, 살기 위해 사랑도 청춘도 가족도 꿈도 버려야 했던 사람들…. 소설 속 등장 인물은 선악 혹은 어느 편이냐를 떠나 한결같이 업고(業苦) 속에 고민하며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충실한 삶이 역사를 바꾸거나 그들 자신의 생을 행복하게 가꿀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역사의 제물이었고, 새 시대를 위해 뿌려진, 아직 익지도 않은 거름이었다.
이 소설은 봉숙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일제시대 말기부터 한국 전쟁 직후까지 격동기를 살아야 했지만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던 민초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들의 지난한 삶을 보여주며 작가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에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더불어 소설은 일제의 앞잡이로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며 전권을 휘둘렀던 대구의 두드러진 친일파 박중양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박중양은 일제의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소문난 사람이며, 일본인들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구읍성을 허물어버린 반민족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작가는 박중양의 삶에 대해서도 무작정 비판이 아니라 깊은 성찰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친일파냐 반일 독립군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대구라는 점은 특히 눈길을 끈다. 현재의 북구 침산동과 대구역, 북성로 일대를 중심으로, 1940년대와 50년대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어 작가의 수고로운 자료 정리 작업을 짐작하게 한다. 상권 382쪽, 하권 352쪽, 각권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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