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의 대학과 책] 국가를 알려면 엘리트를 보라

주장환(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개혁개방기 중국 정치 엘리트(풀빛, 2007)

최근 미국의 올해 회계연도 재정 적자가 사상 최고액인 1조7천5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리 돈 많은 미국도 지금처럼 뭉칫돈이 덩어리째 빠져 나간다면 가까운 시간 내에 궁핍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본주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의 추락은 명약관화한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과 같이 미국의 경기 퇴조가 계속된다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비서구권은 물론이고 서구 유럽까지 미국 자본주의의 하부 구조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공격적 현실주의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는 본능적으로 의리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강한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돈 가진 중국에 대해 관심 가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미국 국채 보유총액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수천년의 묵은 재산과 지난 십수년간의 발전, 그리고 올림픽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수입까지 감안하면 중국이 미국을 돈으로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미국을 구매할 수도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누구나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한 걸음만 더 깊이 물으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중국이 너무나 크고, 사람도 많고, 복잡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커가는 중국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주장환 교수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마련하였습니다. 바로 '개혁개방기 중국 정치 엘리트'(풀빛, 2007)라는 저서입니다. 저자는 한반도 면적의 100배, 약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을 '인간', 즉 중국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정치 엘리트를 통해 이해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국가의 움직임을 13억명이 넘는 중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피상적인 통계 수치만으로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 교수는 중국의 정치 및 사회의 성격을 정의하고 더 나아가 향후 전망을 내리는 데 있어서 '정치 엘리트'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본 것입니다. 구체적인 연구 대상으로 개혁·개방기의 정치 엘리트 990명을 선정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는 개혁·개방기에 해당하는 제12기(1982)에서 제16기(2002)를 중심으로 하였고, 중앙위원회 위원과 그 후보위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 교수의 저서는 전공 서적이지만 마치 기전체로 서술된 중국 역사소설, 무협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우선 베일에 가려진 중국 정치 엘리트들의 진면목을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성별, 연령, 출신 지역, 민족, 주요 경력을 비롯해서 다양한 특성을 조목조목 기술하였습니다. 그리고 단락마다 이들 엘리트들이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결론을 맺어 정리하였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나름대로 유형화하였습니다. 둘째는 각 시기별, 즉 각 중앙위원회 회기별로 엘리트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해당 엘리트들의 성별, 출신 지역, 학력 및 선택 전공, 출신 민족, 주요 경력과 기타 특성들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국내 정책은 물론이고 대외 정책의 향방까지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척도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노래 실력, 악기 연주, 사교춤 솜씨에 대해 알면 그 시기 중국의 대외 지향적 정상 외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집권 2기를 맞은 후진타오 정부의 중앙 고위급 정치 엘리트들 가운데는 김일성대학 출신 한명을 제외하고는 해외 유학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소위 문화대혁명 세대가 현재 중국 정치 엘리트들의 주류인 셈인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외교적 암흑기라 불리던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한 현재의 중국 정치 엘리트들이 무엇을 고민하며, 무엇을 하려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후진타오 정부가 선부론(先富論) 대신 균부론(均富論)을 강조하고, 지역 격차나 도농 간 격차의 해소에 주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들 정치 엘리트들이 관계하는 중국 정치는 그때 그랬던 것처럼 분배 정책을 기반으로 한 내부 정비사업에 치중하게 될 것입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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