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류머티스·당뇨병 '고통의 나날' 김말희씨

▲ 류머티스 관절염과 당뇨를 앓는 김말희(53)씨와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작은아들 강정구(25)씨, 그리고 갑상샘중독증으로 고통받는 큰아들 왕탁씨까지 김씨네 집에는 약봉지가 아예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류머티스 관절염과 당뇨를 앓는 김말희(53)씨와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작은아들 강정구(25)씨, 그리고 갑상샘중독증으로 고통받는 큰아들 왕탁씨까지 김씨네 집에는 약봉지가 아예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가슴에 작은 돌덩이 하나만 얹어 놓아도 숨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가슴에 얹힌 돌덩이가 여러개라면 그 삶은 얼마나 팍팍할까. 게다가 오랜 고통에 희망마저 사그라졌다면.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각자가 감당하기 힘든 병을 끌어안은 가족들끼리 서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김말희(53·여·달서구 상인동)씨의 가슴속 돌덩이는 벌써 십수년 해묵은 고통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당뇨, 고혈압으로 자기 몸조차 건사하기 힘든 그에게는 갑상선 기능 저하로 고통스러워하는 큰아들 강왕탁(27)씨와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작은아들 정구(25)씨가 있다. 한때는 가진 것 없어도 단란한 가정이었지만 남편의 사업 부도와 그에 이은 아들들의 발병, 그리고 이혼까지 이어지면서 김씨의 가정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한 상태였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 3일 오후 만난 김씨는 한 발짝을 움직이는데도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시고 아파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뼈마디가 아파 옷도 얇은 것만 입어야 해요. 무릎 안쪽이 손톱만큼 썩어 들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당뇨 때문에 그도 쉽잖고 수술비 마련할 길도 마땅찮아 약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10㎡도 안 되는 방으로 들어가니 한쪽 구석에 잔뜩 쌓인 박스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둘째 아들 정구씨가 사용하는 의료기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장병이 발병해 7년째 투병 중인 정구씨는 증세가 계속 악화돼 지금은 하루 4차례 투석을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체력이 떨어져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김씨는 "정구는 병원에서 소고기를 하루 200g 정도라도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지만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받아 겨우 먹고사는 처지에 소고기는 엄두도 못 낸다"며 말라 들어가는 아들의 손을 매만졌다. 현재 정구씨는 투석 합병증인 탈수증세가 심해지면서 오른쪽 팔에 근위축증까지 발병한 상태다.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이제는 단순한 가사노동도 힘에 부칠 정도가 됐다.

큰아들 왕탁씨는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갑상샘 중독증으로 안구 돌출이 심해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고 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등교 중에 쓰러져 병원을 찾았더니 갑상샘 중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15년 동안 쉼없이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눈이 튀어나오는 증상이 멈추지 않았고 체력도 떨어져 결국 전문대에 진학하고도 학업을 포기한 채 집에서만 지내는 신세"라고 했다. 수술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비용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의 병력을 털어놓는 내내 김씨와 아들 정구씨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쏟아지던 눈물도 오랜 세월에 말라버린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역 같은 세월이었지만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산다고 했다. 4개월 전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주변사람들 덕분이었다. 전에 살던 집은 절반이 허물어지고 쥐가 뛰어다니는 한옥.

"투석할 공간조차 없어 아들 얼굴 마주하는 것이 미안했는데 이제 비 새는 곳 없고 깨끗한 방에서 투석을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죠.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동네 통장님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았고, 산격사회복지관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 목숨 부여잡고 사는 거지요."

김씨는 지금껏 받은 도움이 고마워 나중에 자신의 장기라도 나눌 일이 있다면 기꺼이 내놓겠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김씨의 소원은 두 아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큰아들의 안구 수술이나 작은아들의 신장 이식 수술 중 하나만 이뤄져도 새로운 꿈을 꿔 볼 수 있겠다고 했다.

"세명 중 한명이라도 병세가 호전돼야 나머지 가족들을 보살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몇 십만원씩 드는 각종 검사비와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계속하고 있는 막막한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습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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