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은 대구에서 으뜸가는 산이다. 비슬산 준령을 따라 북동쪽 끝에 위치한 산으로 도심의 남쪽에서 병풍을 두른 듯 기세당당하다. 비슬산은 유가사(유가 : 인도 육파 철학의 한 요체인 요가에서 비롯됨) 뒤편에 우뚝 솟아 그 최고봉은 해발 1천83.59m를 자랑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輿地圖書(여지도서)' '嶠南誌(교남지)' 모두 이 산을 苞山(포산)이라 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다는 뜻으로 동쪽으로 청도와 대구, 남쪽으로 화왕산, 서쪽으론 창녕의 소백산까지 기록하고 있다.
앞산은 대덕산'비파산'산성산까지 琵瑟山(비슬산)의 맥을 이었고, 비슬은 인도 스님들이 놀러와 보고 부른 이름이라 사찰도 많다. 앞산은 가장 이상적인 도시 생활림이자 삼림욕장이고 심신 수련장인 셈인데 앞산을 비롯해 삼필봉과 청룡산도 포산의 의미를 점점 잃는 것 같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식물은 병해충과 미생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보호와 저항을 위해 특유한 방향 물질을 발산한다. 이 물질을 舊(구)소련 레닌그라드대학의 B.T토킹 박사는 피톤치드(Phytoncide)라 했다. 피톤은 '식물', 치드는 '죽인다'라는 뜻으로 휘발성이 높은 테르핀(Terpene)이란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나무는 일 년 중에 피톤치드 발산이 가장 왕성한 시기가 5월~10월 사이이고, 하루 중엔 오전 10시~12시에 발산량이 가장 많다. 방향 물질인 테르핀은 안정과 해방감을 주고 피로 해소와 심신을 맑게 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이런 앞산의 숲에서 야간에도 방향물질을 발산할까. 밤중에 森林浴(삼림욕)을 즐기는 시민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생각과 느낌의 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것 뿐만 아니다. 앞산 공원을 비롯한 모든 산은 '야호!'하는 함성을 싫어한다. 고요한 산림이라야 야생 동물이 노닐고 蜂蝶(봉접)들이 날아드는 보금자리가 된다. '야호'라는 함성은 메아리를 빙자한 정적 깨뜨리기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우리의 기(氣)를 꺾기 위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과거 일본인들이 닦은 신작로와 철로를 다시 한 번 보자. 하필이면 문화재를 양쪽으로 가르거나 근접하게 비껴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훼손을 부추기고 선조들의 숭고한 혼을 지우려는 야욕과 더불어 명산에 쇠말뚝을 박는 소행까지 우린 훤히 들춰보지 않았던가. 그런 의도를 모른 채 목청 하나로 산자수명을 들먹이는 함성은 각자 스스로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앞산은 또한 원시적인 자연이기를 애원한다. 그렇게 바쁘지 않은 등산인들은 첩경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한 번 밟고 또 밟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샛길은 생명의 터전을 앗아가는 악순환의 족적이다. 이 때문에 하늘 향한 갈비뼈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름아름 가슴 앓는 등산로에 휴식년제 도입도 필요하겠지만 시민들에게 굳이 그렇게 간섭을 해야만 하겠는가.
대구의 날씨는 강우량이 적다. 일생 한쪽 다리로 비탈 잡은 나무들 역시 늘 갈증에서 헤매고, 어쩌다 실수인 듯 비가 오면 햇살도, 수분 증발도 재빨라 공중 습도 역시 매우 낮은 편이다. 사정은 다르지만 호주의 산불은 온 하늘을 검붉게 만들었고, 창녕의 억새는 화마로 급변했듯 전국을 넘나드는 바람은 늘 기회만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중국의 사서삼경 중 中庸(중용)의 성론 편에 나오는 「天地道誠一不貳(천지도성일불이)」라는 글귀를 보자. 천지의 도는 한마디로 그 되어짐이 성일불이한지라 만물을 생성시킴이 헤아려지지 않는다 했다. 이런 앞산이 봄 앓이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앞산에 병 주고 약 주지는 않는지 되묻고 싶다. 자연은 빈손, 마음 비우고 욕심도 버리고 또 배낭도 버려 빈손이면 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축복받은 앞산에도 봄은 오는데 빈 손으로 가서 앓지 않게 될 처방전을 주도록 하자.
권영시(대구시 앞산공원 관리사무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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