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폭풍 속으로 1」/ 황인숙

나뭇잎들이, 나뭇가지들이 파르르르 떨며

숨을 들이킨다

색색거리며 할딱거리며, 툭, 금방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져, 부풀어, 터질 듯이

파르르르 떨며

…흡! 흡!

하늘과 땅의 광막한 사이가

모세관처럼 좁다는 듯 흡! 흡!

흡! 흡! 흡! 거대한, 흡!

'파르르르'라는 의태어는 나뭇잎과 나뭇가지의 긴장의 몸짓이면서 또한 나뭇가지의 떨림에서 오는 의성어와 겹치기도 하는데 그 중첩된 이미지는 계속하여 '파르르르'라는 말에서 파리하다는 색깔까지 보여준다. 황인숙의 태풍은 장자가 하늘과 대지 사이에서 깨달은 소리들의 천 가지 모양새처럼 역동적이다. 의태어와 의성어들은 바람의 손짓과 숨결이기도 하다. 되풀이되는 쉼표는 상황의 급박함을 스타카토로 끊어가면서,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나뭇잎/나뭇가지의 바람이면서 거꾸로 거대한 폭풍의 바로미터를 또박또박 보여주는 데 있다. 나뭇가지의 움직임은 폭풍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꺾은선그래프에 맞춤한 것. 약한 나뭇잎/나뭇가지는 그러나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놀라운 적응을 한다. 폭풍주의보가 휩쓸고 지나가는 모든 영역에서 나뭇잎/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부대끼다가 급기야 바람을 '흡! 흡!' 흡입한다. 그냥 바람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의 모세관을 통해서 세상 모두를 흡입한다. 폭풍의 기미에도 터질 듯 부풀어간 나뭇잎/나뭇가지가 폭풍/세상의 생명력을 흡입할 정도로 거대한 우주를 제 속에 지니게 된 소이는 그러하다. 겨자 속에 우주를 간직한 이 놀라운 반전은 모든 물질은 그 자체 속에 생명을 갖추고 있어서 생동한다는 물활론적 세계관이다.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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