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5)씨는 얼마 전 무심코 도로 표지판을 보다가 '저게 무슨 글자일까?' 한참 생각했다. 'C&友邦乐园(우방낙원)'과 '头流公园(두류공원)'이라는 한자가 눈에 익지 않은 문자였다. 한글표기를 보고서야 'C&우방랜드'와 '두류공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예전처럼 'C&友邦樂園' '头流公園'이라고 써놓으면 쉽게 읽을 수 있을 텐데 중국식 한자로 적어 놨으니 누가 알아보겠느냐"며 "중국이 간체자를 쓴다고 해서 우리가 따라하는 건 지나친 모화사상"이라고 흥분했다.
대구시가 관광안내 표지판에 중국식 간체자(簡體字)를 쓰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글지명 아래 한자와 영어 표기를 병행하는 관광안내 표지판에 한자를 정자로 쓸지, 간체자로 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 예전 대구에 대한 영어표기로 'Taegu'와 'Daegu'를 놓고 벌인 논쟁에 이은 제2탄인 셈이다.
대구시는 지난 2000년부터 관광안내 표지판에 한자를 넣기 시작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부터 한지표지판 수가 부쩍 늘어났다. 이때 쓰인 한자는 정자인 '번체(繁體)'였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한자 표기가 알기 힘들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한국관광공사가 이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간체자 사용을 독려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의 언어정서에 부합한다'며 일본어, 중국어(간체자) 표기를 더한 다국어 안내표지도 탄생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올해부터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장 광주관광협회장은 "우리식 한자로 표기해도 중국인들이 알아볼 수 있다"며 "중국도 국제화 시대에 중국식 간체자를 사용하면 손해라는 것을 알기에 명함에도 간체자보다는 정자인 번체를 많이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과 대만 사이에 각각 달리 쓰는 간체자와 번체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중국식 간체자 표기를 그대로 따를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한글학회 한 회원은 "한자표기와 뜻은 나라마다 다르게 사용한다"며 한자 병기 자체를 반대했다.
긍정적인 시각도 적잖다. 각 지방자치단체 관광홍보 담당자들은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김하나(22·여)씨는 "영어 표기도 많은데 유독 중국 간체자에 대해서만 비판적인 것 같다"며 "한글과 병기하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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