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은 한국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많은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문을 주고 받으며 우리문학의 꽃을 피운 곳으로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정해정의 석촌별곡 등이 전승되고 있다.
또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대숲이 있으면 마을이 있고 마을이 있으면 대숲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가 많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를 통해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누가 시킨 것이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라고 대나무를 노래했다. '대쪽같다'는 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대나무는 절개 있고 심성 곧은 사람에 비유돼 왔다. 대나무와 선비, 그 둘은 참 잘 어울린다. 선비정신이 면면히 내려오는 담양에 대나무가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봄이 오는 길목, 최근 KBS오락프로그램 '해피 선데이'의 1박2일팀이 다녀가면서 새삼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담양으로 가봤다. 담양의 볼거리도 크게 대나무와 가사문학으로 나뉘어진다. 88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담양IC에서 내리면 한국대나무박물관'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소쇄원'한국가사문학관'식영정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란히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한국대나무박물관, 왼쪽은 소쇄원 가는 길이다. 한국대나무박물관'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한번에 둘러보기 좋을 만큼 따딱따딱 붙어 있다. 한국대나무박물관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소쇄원'한국가사문학관'식영정도 한곳에 모여 있다.
◆한국대나무박물관
담양IC에서 5분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5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담양죽세공예 전통과 대나무의 모든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5만㎡ 부지에 전시실'대나무테마공원'죽종장'대나무공예체험교실'죽제품전문판매장 등이 들어서 있다. 전시실에서는 대나무의 생태와 세계 대나무 분포 현황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현대와 과거를 잇는 다양한 죽물,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대나무 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대나무테마공원은 연못'대나무산책로'잔디광장 등으로 이뤄져 있어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죽종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대나무가 있으며 대나무공예 체험장에서는 부채'방석'열쇠고리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한국대나무박물관에서 나와 13번국도 방면으로 좌회전 한 뒤 100여m 가다 다시 좌회전과 우회전을 잇따라 하면 눈앞에 가로수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영화 '와니와 준하'의 촬영 무대가 된 곳이다. 1970년대 초반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하늘을 찌를 만큼 울창하게 자랐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숲'으로 선정한 곳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근위병처럼 도열해 있는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왜 꿈의 드라이브코스로 불리는지 실감이 난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쳐 버리기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메타세쿼이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향기에 매료돼 산림욕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방제림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 남쪽에 조성된 숲이다. 조선 인조26년(1648년) 부사 성이성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한 뒤 나무를 심었고 철종5년(1854년) 부사 황종림이 다시 제방을 축조하면서 숲을 조성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산리 동정마을부터 천변리 옛 우시장까지 2km에 걸쳐 푸조나무'팽나무'느티나무'음나무'개서어나무 등 낙엽성 활엽수가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 내에는 수령 200~400년 된 아름드리 고목 177그루가 있다. 곳곳에 벤치와 평상, 정자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다. 제방 아래 쪽에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어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담양천과 인접해 나무로 만든 길도 조성돼 있다. 수십개의 돌을 놓아 내를 건널 수 있도록 한 징검다리도 정겹다. 관방제림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이어진다. 죽녹원 정문 맞은편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자전거를 빌려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달려보는 것도 좋다.
◆한국가사문학관
죽녹원에서 29번국도(광주 방면)와 887번지방도(창평 방면)를 타고가다 보면 나온다. 가사문학을 전승'보전하고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담양군이 88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0년 10월 완공했다. 본관과 부속 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등 귀중한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사문학관련 서화 및 유물 974여점, 담양권 가사 18편과 관계 문헌, 가사관련 도서 5천132여권이 전시돼 있다.
◆식영정
가사문학관 바로 옆 광주호를 마주보고 있는 작은 야산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명종15년(1560년)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지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집(건물 네귀퉁이에 추녀를 달아 만든 집)으로 한쪽에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정철보다 11세 연상이었으나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했다. 식영정에서 김성원은 정철'고경명'백광훈'송익필 등과 교유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정철은 식영정을 비롯해 환벽당'송강정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아 '성산별곡'을 창작했다. 산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광주호를 건너온 봄바람과 향긋한 솔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식영정 앞에 서면 가뭄탓에 여윈 몸을 훤히 드러낸 광주호가 솔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경치가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이름(息影亭)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소쇄원
한국가사문학관에서 900m 떨어져 있다.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변을 당하게 되자 제자였던 양산보가 출세의 뜻을 버린 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꾸민 정원이다. 양산보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를 정원 명칭으로 붙인 뒤 자신의 호도 소쇄옹으로 했다. 조선시대 원림건축의 백미로 꼽힐 만큼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정원 배치가 돋보인다. 들어가는 길 양편의 대숲을 지나면 개울 따라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소쇄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은 크게 애양단이 있는 전원(前園)과 광풍각'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제월당이 있는 내원(內園)으로 이뤄져 있다.
'한겨울에도 햇볕이 들어 따뜻한 곳'이라는 애양단(愛陽壇)은 자연과 조경시설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애양단과 계곡 물이 다섯번 휘어져 돌아 내려온다는 오곡문을 지나면 소쇄원 주인이 머물던 제월당(霽月堂,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에 닿는다. 제월당 마루에 앉아 시선을 앞으로 뻗으면 광풍각 지붕에 닿고 그 너머로 대숲이 보인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소리에 제월당 앞 산수유가 노란 망울을 떠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월당에서 얕은 담에 기댄 작은 문 하나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사랑방 역할을 했던 광풍각(光風閣,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다.
◆그 외
정철이 4년간 머물면서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많은 작품을 남긴 곳으로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는 송강정(고서면 원강리), 송순이 '면앙정가'를 지은 면앙정(봉산면 제월리), 정자'시냇물'연못'백일홍'노송이 조화를 이뤄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명옥헌원림(고서면 산덕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1km 정도 가면 죽녹원과 관방제림이 나타난다. 죽녹원과 관방제림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채 마주보고 있다. 죽녹원 전망대에서 보면 관방제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죽녹원 옆 담양종합체육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죽녹원을 먼저 둘러보고 관방제림을 천천히 산책하면 좋다.
죽녹원은 담양군이 조성한 죽림욕장으로 운수대통길(440m), 샛길(100m), 사랑이 변치 않는 길(460m), 죽마고우길(150m), 추억의 샛길(150m), 성인산 오름길(150m), 철학자의 길(360m), 선비의 길(440m) 등 8개의 산책로와 생태전시관, 정자, 쉼터가 조성돼 있다. 영화 '알포인트', SBS드라마 '일지매'에 이어 최근 1박2일이 촬영되면서 평일인데도 나들이객들로 붐볐다. 푸른 대나무가 하늘을 가린 데다 날씨마저 포근해 계절이 겨울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조금만 걸으니 금세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대바람이 일상에 지친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푸른댓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상쾌하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TIP]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는 대통밥이 유명하다. 한국대나무박물관내와 죽녹원 인근에 대통밥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있다. 소쇄원 주차장 이용료는 2천원. 영수증을 버리지 말고 잘 간직해야 한다. 한국가사문학관 주차장 이용에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녹원'소쇄원'한국대나무박물관'한국가사문학관 입장료는 각 500~1천원으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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