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의 소도시 롱뷰(Longview). 레투너(LeTourneau) 대학교에서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인 교수를 찾아가는 길이다. 바로 김준완(39) 교수다.
댈러스 공항에 내려 시외 버스로 20번 하이웨이를 타고 2시간 거리. 나지막한 건물들이 넓게 펼쳐진 붉은 벽돌의 레투너 대학이 눈앞에 들어왔다. 레투너 대학은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4천여 명의 학생 대부분이 백인인 텍사스의 명문 사립대"라고 설명했다. 2차 대전 당시 군수 물자로 돈을 번 발명가 레투너 씨가 1946년 설립한 대학이다. 항공기 관련 엔지니어를 전문으로 양성하고 학비도 비싼 편. 그는 이 대학의 핵심학과인 전기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칼 같은(?) 인상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전기공학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는 대구대 정보통신공학과 89학번. '엔지니어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소신으로 공대를 지원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치 않고 있다. 대학 3학년이던 1991년 혼자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 소신은 더욱 글로벌화되었다. 공항에 내려 자동차를 빌려 미국 전역의 도서관을 돌면서 미국에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해 94년 앨라배마 주립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기초가 안 돼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교수들로부터 "왜 자꾸 외우려고 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4년 반 만에 석사를 마쳤다. 97년 급성 폐렴으로 시커먼 피를 콸콸 쏟으며 따낸 학위였다.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었다. 6개월간 한국에 돌아와 심신을 다스린 후 다시 들어가 따냈다.
그의 저돌적인 면모는 박사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지도 교수가 강의를 제안한 것이다. 백인우월주의가 심각한 지역에서 동양인이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 처음에는 두려워 망설였다. "그래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벽이 있으면 넘으면 된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물론 불만도 없지 않았지만, 철저한 수업 준비로 이를 잠재웠다. "차츰 자신감도 생기고, 좋은 반응도 얻었습니다. 2003년 8월 레투너대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강의를 듣고 만족한 레투너 대학에서 전격적으로 그를 임용했다.
현재 레투너대 140명의 교수 중 동양인은 2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다. 텍사스는 텃세가 센 지역이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몇 배 더 해야죠. 특히 사립대는 부모들의 입김도 세고, 늘 새로운 것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교수가 공부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이겨 낼 수 있었던 힘은 엔지니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었다. 이공계 기피는 현재 미국도 마찬가지다. "고교생 100명 중 32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 중에 2명이 공학 계열에서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그래서 텍사스 주 정부와 이공계 회사들이 함께 기금을 마련해 TETC(Texas Engineering and Technical Consortium)를 운영하고 있다. 기금으로 각 대학에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눈을 돌렸다. 장학금으로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이를 취업으로 연결시키는 계획이다. 2005년 미국 대통령 직속인 국가과학재단(NSF)에서 연구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 52만9천달러(한화 약 8억1천만원)의 기금을 레투너 대학이 받도록 했다. 이 기금은 레투너 대학 6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기금이었다. 이 기금을 통해 더 많은 엔지니어를 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8월 부교수로 승진한 것도 그의 이런 열정과 노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현재 4학년 졸업 연구 프로젝트를 군수물자회사인 록웰(Rockwell)로부터 7만5천달러를 지원받아 추진하는 등 활발한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반응이 좋아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도 연구실과 실험실에 파묻혀 살고 있다. 평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오후 8시부터 월요일 새벽 2시까지 연구실 문을 열어놓고 학생들을 맞고 있다. "골프요? 시간이 없어 못 칩니다."
지난 94년 결혼한 아내(김민정)의 지원도 크다. 미술대 91학번으로 대학 2년 후배다.
그는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만들어 미국에서 받은 것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끊임없이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도 한다. "한 학생은 자기를 한국 이름으로 불러 달래요. 그래서 뭐라고 지었느냐고 하니 '국수'라고 지었대요. 뜻을 아느냐니까 '누들'이라고 하면서 한글로 '국수'라고 써 나한테 주는 거예요."
그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미국 랭킹 38위인 레투너 대학을 20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그는 "대구대 출신으로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며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5년째 대구대 대학원생을 일주일에 2시간씩 전화로 공부시키고 있다. 거의 매년 미국의 장비를 비행기에 실어 대구대 공대생들에게 보여주며 특강도 한다. "미국 오고 싶으면 우리 집에서 자라고 해요. 전 정말 목숨 걸고 합니다.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런 대구대인이 되라고."
텍사스 롱뷰에서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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