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다.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못 보이다가 지금은 대형상영관에서 앞 다투어 상영을 하고, 또 얼마 전 200만 관객이 넘었다는 기사도 보도되었다. 인간성을 왜곡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와 저질 코미디가 판치는 이때, 전문가들은 디지털문명으로 대변되는 21세기 삭막한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농경사회의 추억과 소걸음과 같은 느림의 미학이 어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할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의외의 인기비결은 우리 마음 깊은 곳 누구나 그리워하고 있는 삶의 여유를 되새겨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사실 근대사회 이전의 우리 민족의 삶은 느림의 미학이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만들거나, 집을 짓고, 도자기를 만드는 등 거의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우리의 삶은 '느림'으로써 민족의 특징적인 행동을 상징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에 비해 문명화되고 현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는 갈수록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며 복잡해지고 있다. KTX가 시속 300㎞를 넘나드는 속도로 달리고, 인터넷도 초고속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다. 소위 '신상'과 '얼리 어답터'가 현대인의 능력으로 여겨지고, 분초를 다투는 생활과 눈에 보이는 변화와 결과를 기대해서 무언가를 빨리 해내어야만 가치 있으며,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남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내면에는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은 한 강의에서 옛날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던 유럽인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유럽 탐험가들이 원주민들을 앞세워 쉬지도 않고 목적지로 향했는데, 사흘째 되던 날 원주민들이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더라는 것. 탐험가들이 이유를 묻자 원주민들이 "우리는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다.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쉬어야 한다."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낸 이야기인데 속도와 효율성만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이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갖가지 조건은 이 삶의 여유와 느림을 힘들게 만든다. 느림은 게으름, 빠름은 부지런함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느림과 늦음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일상화된 과속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보고,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하루가 너무나 길고 보고 느낄 것도 너무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아닐까.
성기혁(사랑이 가득한 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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