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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안동소주,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 안동소주
▲ 안동소주
▲ 놋다리밟기
▲ 놋다리밟기
▲ 차전놀이
▲ 차전놀이

안동은 고려 역사의 시작과 끝을 알린 곳. 그래서 고려는 안동 땅에 적잖은 문화 유산을 남겼고, 지금도 계승돼 내려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안동소주와 놋다리밟기, 차전놀이' 등이다. '말로 된 역사'인 전설에 따르면 안동소주는 전쟁이 그 매개였고, 놋다리밟기에는 사랑의 대명사 노국 공주가 그 중심에 있다. 차전놀이는 "소금에 약하다"는 견훤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

술은 전쟁 수행의 가장 큰 수단으로 종종 활용된다. 안동의 소주는 고려 충렬왕 때의 일본 정벌과 그 맥을 같이했다고 한다. 충렬왕은 30일간 안동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원나라군과 일본정벌을 단행했다. 당시 소주를 좋아했던 원군들은 본국의 술을 가져와 안동 체류 기간 동안 마셨고, 일본 정벌에 실패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안동에 소주를 만드는 방법을 전파했다. 또한 충렬왕이 안동에 체류했을 시기의 궁중음식에는 그에 준하는 술이 만들어졌고, 그 술이 이후 안동지방에 알려져 지금의 안동 소주라는 훌륭한 작품을 낳았다는 것이다. 충렬왕이 안동에 임시 수도를 정한 것은 안동인이자 당시 고려의 도원수인 김방경 장군의 영향 때문이고, 자연 장군이 안동에 소주를 전래시킨 또 다른 주역이라는 역사적 추측도 있다. 안동 소주의 출발은 고려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이견이 없을 것이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놋다리밟기는 전설에 따르면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아내인 노국 공주와 함께 안동에 피난을 왔고, 노국 공주가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부녀자들이 등으로 다리를 놓아 공주가 밟고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안동에 머물고 있는 노국 공주를 위로하기 위해 공주로 하여금 부녀자들의 등을 밟고 가게 하는 놀이를 고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놋다리밟기다. 놋다리밟기는 노국공주 이전부터 안동 땅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여성이 남장을 해 놋다리를 밟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노국공주가 놋다리밟기에 참여했고, 지금은 노국 공주 전설이 놋다리밟기 시작의 가장 큰 줄기로 안동 땅에 인식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차전놀이 전설의 공통점은 바로 고려의 시작을 알린 고창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견훤의 지렁이 설화와도 연관이 있다. 왕건과 견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가를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안동인들은 견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고려 진영에 보고했고, 견훤이 지렁이의 화신임을 알고난 뒤 비밀리에 등짐장수를 시켜 소금을 비축했다가 몰래 전장의 물웅덩이와 개천을 소금물로 만들었다.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견훤군은 소금물로 된 개천에 빠져 죽는 등 대패했다. 대승한 고려군과 안동인들은 승전잔치를 열었고, 이때 등짐장수들은 흥에 넘쳐 쪽지게 위에 우두머리를 태우고 승전가를 부르며 뛰어놀았다는 것이다. 그 후 안동인들은 쪽지게를 본뜬 놀이기구를 만들어 덕망 있는 사람을 태우고 양편으로 나눠 놀이를 했고, 지금의 차전놀이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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