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직 은퇴 서태원씨, 수생식물 재배로 찾은 천진한 행복

삶은 아름다운가. 행복한가. 한평생 행복한 순간은 얼마나 될까. 지금 당신은 진정 하고픈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만족하는가. 그렇다면 즐거운 인생일 것이다.

삶과 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이 삶이고, 삶이 곧 일이다. 먹기 위해서, 생활을 위해서, 부의 축적을 위해서, 배우자와 자식을 위해서…. 그러나 과연 행복을 위해서, 행복한 일을 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물론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다른 것까지 충족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게다.

직장인이든, 사업을 하든, 전문직이든 그 일이 죽을 때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제2의 인생, 제2의 일이 필요하다. 더욱이 현재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더 그렇다.

서태원(60·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요즘 늘 즐겁다. 신명난다. 이마와 눈 주위 주름살이 늘어도 늘 웃는다. 하회탈 같은 인상이다. 곁에는 늘 푸른 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60여종의 수생식물이다. 좋아하는 꽃이 있다. 향기가 그득하다. 좋아하는 카메라도 있고, 심돌이, 심순이도 있다. 돌이와 순이는 강아지다. 수생식물을 담을 옹기들도 저마다 모양을 뽐내고 있다. 옹기 대다수는 전기나 가스 가마가 아니라 장작불에서 태어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나를 둘러싼 사물과 일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 일은 고역이 아니라 즐거운 노동이다.

비닐하우스 4개 동 안에는 서씨의 제2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600㎡ 남짓하지만 결코 좁지 않은 세계다. 서씨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씨는 말한다. "꽃과 식물은 속이지 않아요. 한 포기 한 포기마다 손길이 간 만큼, 정성을 들인 만큼 자라지요. 꼭 보답을 합니다. 심돌이와 심순이도 사람처럼 배신하지 않지요."

서씨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겁니다. 가치 있는 삶이지요."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꽃이 있고, 식물이 있고, 사진이 있고, 음악도 있다. 모두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꽃과 식물이 빼곡한 하우스. 갓 태어난 아기 식물부터 하우스 천장까지 우뚝 솟은 어른 식물까지 다양하다. 그 식물은 매일 서씨의 손길을 받고 있다. 식물은 그 손길에 보답한다. 하우스 옆면에는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촬영한 꽃과 식물, 자연의 사진이 걸려 있다. 또 꽃과 식물 사진을 컴퓨터 작업을 통해 만든 영상물이 음악과 함께 상영되고 있다.

서씨의 수생식물 전문화원 이름은 심원(心園)이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다. 70년대 지리산을 좋아해서 수십 차례 올랐다. 칠선계곡, 피아골, 대원사, 뱀사골, 불일폭포, 반야봉 등 깊은 골까지 샅샅이 훑었다. 당시 PC통신서비스 천리안의 ID도 지리산과 관련해 붙이고 싶었다. 다행히 지리산 심원계곡의 '심원'을 ID로 사용하는 이가 없었다. 그때 ID인 심원이 지금 수생식물원의 이름이 됐다.

심원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의 정원'이란 이름만큼이나 푸근하다. 동네 주민들도 수시로 들러 차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눈다. 차는 셀프고, 공짜다. 갖가지 식물 구경도 하고, UCC 동영상 제작법도 서씨에게 배울 수 있다. 서씨는 교직 때 교육정보화 과장을 지낼 정도로 컴퓨터 조작에도 능숙하다.

서씨는 지난해 3월 정년을 3년 6개월 남긴 상태에서 39년 교직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심원을 직접 꾸몄다. 진정으로 원하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서였다.

계기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였다. 한 은행의 중간간부가 구조조정을 당한 뒤 언론에 인터뷰한 내용을 봤다. 그 간부는 '대학 졸업 뒤 새벽별 보고 출근해 밤별 보고 퇴근했다. 성실한 은행원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오니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은행 안에서는 유능했지만, 일반 사회인이란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잘못 살았다.'고 했다.

서씨는 이 글을 보고난 뒤 '난 과연 학교를 그만 두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후에,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게 됐다.

서씨는 그때부터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70년대 흑백사진 찍는 취미를 가졌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중간에 그만뒀다. IMF 이후 틈만 나면 지프를 몰고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 팔도를 다녔다. 산과 계곡, 식물원, 농장, 박물관 등지에서 꽃과 식물 사진을 촬영했다. 당시 그는 속도위반 딱지를 한 달에 대여섯 장씩 받았다. 짧은 휴일 동안 먼 거리를 달려 여기저기 많은 곳을 보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옹기도 모았다. 빛깔이 다양하고 운치가 있는 전통가마의 옹기만 고집했다. 요즘은 울산의 한 전통가마집을 자주 드나든다. 주로 수생식물을 담을 화분용이다.

당시 수생식물에 특히 관심을 쏟았다.

그는 "수생식물은 물만 제때 제대로 주면 키우기가 쉽고, 실내 가습효과도 크다."며 "아이들의 아토피나 건성피부에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 학교 나갈 때는 교실, 복도 등에도 많이 갖다 놓았다"고 했다.

서씨는 지난 2002년 시지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부터 학부모나 아이들에게 직접 키운 수생식물 화분을 나눠줬다. 2006년 범일초교 교장 때는 아예 사비를 들여 교내에 유리온실을 만들고, 수생식물을 직접 가꾸기도 했다. 수생식물 전도사가 된 것.

서씨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 IMF 이후라면, 제2의 삶에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은 2006년 4월 위암 수술을 받고 난 뒤였다. 비록 수술은 성공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서씨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취미로 짬짬이 해왔던 수생식물을 모으고, 키우고, 돌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진 촬영하는 것. 약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지난해 3월 드디어 '마음의 정원'의 문을 열었다.

서씨는 매일 오전 6시면 수성구 집에서 나온다. 4개동 하우스 문을 열고, 온도를 점검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손질을 한다. 포기나누기, 꺾꽂이, 병충해 방지약 뿌리기 등 손님이 없을 때는 좀처럼 쉬지 않는다. 겨울에도 실내 온도를 최저 15℃ 이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비닐하우스에서 밤을 보낼 때도 잦다. 교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다. '수련, 안트니 토리우스, 엄브렐러, 파피루스…' 60여종의 수생식물과 꽃들은 서씨의 자식과도 같다.

서씨는 "아내와 자식도 소중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는 내 일거리가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항상 갈 데가 있어 좋아요. 매일 일해도 일거리는 늘려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서씨는 소탈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욕도 잘한다. 제2의 인생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낀 채 일하는 그의 얼굴에서 겨울 꽁꽁 언 개천에서 썰매를 타고 즐기는 동심의 표정이 묻어났다. 지금 서씨에게 삶은 아름답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1. 나 자신을 알라

새로운 삶, 제2의 인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우선이다. '나는 어떤 특성과 소질을 갖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제2의 인생이 아니라 제3, 제4의 인생을 새롭게 고민해야 되고, 그만큼 허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이다. 또 시행착오를 자주 겪다 보면 결코 즐거운 인생으로 자리매김하기도 어렵다.

2. 미리 준비하라.

제2의 인생은 '정년이 될 때, 직장을 잃고 난 뒤, 나중에 나이가 들 때'라고 설계를 미루면 이미 늦고, 그만큼 어렵다. 서씨는 "후회하지 않는 삶은 계획하고 설계하고 예측하는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경험하면서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는 것. 기회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이에게 주어지는 법.

3. 기본 여건을 마련하라.

고향과 터전이 있는 사람이 그곳에서 제2의 삶을 살려고 하면 벌써 상당한 여건을 갖춘 셈이다. 조그만 터전이나 땅이 있다면 벌써 절반의 준비가 된 것. 터전이나 최소한의 자금이 없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과 대가가 필요하다. 붓글씨를 쓰든, 스포츠를 하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업을 하든 기본적인 공간과 종자돈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4. 더불어 즐겨라.

인간 세상에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면 그 삶은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서씨는 "아무리 자기만의 세상, 개인적인 작업에 치중하는 삶이라도 다른 이들과 공유하지 않는다면 외롭고, 또 결코 즐거운 인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유와 나눔의 철학이다. 취미도, 작업도 더불어 느끼고 함께한다면 즐거움은 두배, 세배가 될 수 있다는 것.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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