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도 뽑는 곳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행정인턴제가 시행 한 달을 넘겼다. 대구시에서도 24억원의 예산을 들여 행정인턴 264명을 뽑아 이들이 지난 1월 30일부터 10개월 기간으로 대구시청과 각 구·군청에서 일하고 있다. 일반행정, 전산, 시설, 공업, 사회복지 등 5개 직렬에서 5.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관공서에서 일하고 있는 행정인턴들은 벌써 첫 월급으로 70만원 남짓한 '2월 급여'도 받았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행정인턴제는 취업준비생에게 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현장경험을 익혀 취업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뜻하지 않은 신경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공공근로, 행정인턴, 예비공무원(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아 수습과정을 밟고 있는 직원)들이 한 곳에 뒤섞여 있는데다 일의 질이나 양도 천차만별이라 '복불복 제도'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행정인턴의 하루는 사람마다 다르다
3일 오후 대구의 한 구청 복지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행정인턴 A(27·여)씨는 청소년지도위원 사진 교정에 한창이었다. 일거리가 따로 정해지지 않아 임시로 하고 있는 일이었다. 실제 A씨가 맡은 일은 결식아동급식실태 파악이었지만 초교가 개학을 한 이후라 할 일이 없어진 셈.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고 전공도 전산계열이라 전산직에 지원했지만 손이 많이 필요한 부서로 배치된 A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째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지난해 공공근로로 일한 적도 있다는 A씨는 "관공서에서 일하면서 현장경험을 익힐 수 있어 괜찮은 제도"라며 "평소 일하기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A씨도 여느 행정인턴들과 비슷한 '자신의 입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를 개인 공부에 활용한다는 A씨는 "공공근로, 행정인턴, 예비공무원들까지 모두 비슷한 또래여서 처지가 비교된다"며 "하루빨리 시험에 합격해 떳떳하게 출퇴근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날 비슷한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B(28·여)씨는 지금까지 150군데에 가까운 일반기업에 입사지원을 했을 정도로 취업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지금도 업무를 마치면 학원으로 간다는 B씨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고 직원들도 격려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B씨는 "제도에 대한 행정인턴들의 불만과 부정적인 시각이 언론에 자주 나와 난감하다"며 "개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일 또 다른 구청에서 만난 C(30)씨는 3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 '경력 취업준비생'이었다. 경제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C씨는 하루 일과가 바빠 책을 볼 시간은 아예 없다고 했다. C씨가 맡은 일은 기업지원 책자에 들어갈 자료수집과 시설 변경과 관련한 현장조사 업무. 이날 오전에도 현장에 다녀온 C씨는 "1주일에 한 번은 현장에 담당직원과 함께 나갔다 온다"면서 "오전에 끝내야 할 안내문 발송업무는 손도 못댔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C씨도 행정인턴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길어야 10개월, 짧으면 당장이라도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을 떠날 수 있는데 만에 하나 새로운 직장에서 우리에 대한 기사를 보고 고운 시선을 보내겠냐"며 "오히려 경력란에 행정인턴 경력을 안 쓰는 게 이득이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함께 일하면서도 불편한 건 사실
민원이 많은 복지 관련 부서 등 일부 격무부서에서는 행정인턴들이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철저한 보안관리를 정부가 주문하고 있어 행정인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자료 입력 등에 그치고 있다. 복지 관련 부서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행정인턴에게는 보안상 책임 있는 임무를 부여할 수 없는데다 행정인턴이 일으킨 보안 사고에 대한 책임은 소속 부서장에게 있어 일의 수위조절이 힘들다"고 말했다.
행정인턴들은 전산시스템이 있는 통신실, 주요 문서가 있는 문서고 등 중요 지역의 출입이 통제되고 중요 문서 및 자재 취급을 할 수 없다. 심지어 USB 사용도 금지된다.
때문에 신뢰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보안상의 이유 등으로 할 만한 일을 주지 못해 공부하는 시간 등이 늘어나자 공무원들에 대한 '감시자'가 되고 있는 것. 6년차 한 구청 공무원은 "옆에서 직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던 행정인턴이 무심코 흘린 '공무원들의 일이 단순하다'는 말을 듣고 까무러칠 뻔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정인턴들이 업무 중에 책을 보는 것도 당연했다. 직원들은 "정부가 지침으로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을 주라고 하는데 그런 일은 잘 없다"며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펴놓고 공부하라고 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하든, 책을 보든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면 '만사 OK'. 그 때문인지 행정인턴들의 컴퓨터에는 하나같이 '정보화마을 메신저'라는 메신저가 깔려 있었다. '정보화마을 메신저'는 정보유출을 방지를 우려, 관공서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메신저. 우스갯소리로 "행정인턴들이 '정보화마을 메신저' 보급의 선구자"라는 말이 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들에 대한 평가 규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관리지침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현업평가'와 '과제평가' 두 가지를 실시해 60점 미만이면 경고 처리, 두 번 경고를 받으면 계약 해지로 이어지지만 아직 대구시는 업무평가를 하지 않은 상태. 심지어 '과제평가'라는 게 뭔지 모르는 이들도 적잖았다.
이렇듯 공무원들마저 이들과 신뢰 영역을 구축하지 못해 '불편한 관계'가 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조만간 이곳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일을 못한다고 질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솔직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공공근로, 행정인턴, 수습 공무원들까지 합하면 젊은이들이 넘쳐나지만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잘 없다는 것.
한 간부 공무원은 "책임있는 일을 맡길 수 있는 수습 공무원들에게도 일을 맡기는 데 한계가 있는데…. 우리 구청에 발령이 안 날지도 모르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정인턴 확충 등을 위해 자율분담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기초자치단체가 성과상여금, 연봉의 일부를 내놓는 데 따른 직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우리가 흘린 땀을 짜내 우리 조직에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을 더 늘리는 데 써야 하느냐"는 것.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
정부도 인턴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최근 국회 대정부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청년실업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없다"며 "청년인턴제를 실시하지만 단기적인 미봉책일 뿐"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실제 행정인턴제를 수료한 이들에겐 공무원에 임용될 경우 근무기간의 50%(5개월)를 유사경력으로 호봉에 가산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혜택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도 "정규직 공무원 채용을 확대하는데 대한 논란도 있고 정규직을 늘리더라도 규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행정인턴은 청년들에게 임시 일자리라도 제공해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들이 다시 채용문을 열었을 때 취업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행정인턴제를 공공근로와 별 차이 없는 제도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 공공근로로 한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D(26·여)씨는 행정인턴제를 알고 있었지만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구의 4년제 대학 어학계열을 졸업한 D씨가 고민 끝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공공근로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도 있지만 "10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다른 곳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공근로를 시작한 지 두달째인 D씨는 "피시방, 편의점 등 다른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봤지만 공공근로만큼 시간대비 수익이 높은 아르바이트도 없다"면서도 "몸은 편할지 몰라도 한창 움직여야 할 나이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근로도 3회까지 연장할 수 있는데다 급여도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D씨의 한달 실급여는 70만원 남짓. 행정인턴의 실급여는 80만원대다.
행정인턴들도 이 제도의 특성을 미리 알고 상당수가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에 1천200여명이 지원, 서류전형을 통과한 이들은 346명. 하지만 이 중 85명은 면접에 불참했고, 합격자 중 28명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한달이 되기 전 5명이 중도포기했다. 대구시는 "취업으로 중도포기자가 생겼다"고 밝혔지만, 일부는 제도 자체에 만족하지 않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두는 행정인턴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3월이 되면 취업시즌이기 때문에 나갈 사람이 더 생길 것으로 보고 예비 후보자 15명 정도의 리스트를 마련해뒀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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