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지(淨土寺址) 거돈사지(居頓寺址) 법천사지(法泉寺址) 흥법사지(興法寺址)….
충북 충주와 강원도 원주지역에 걸쳐 두루 흩어져 있는 이곳들은 문화유산답사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이름으로 다가오는 남한강 유역의 폐사지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곳은 발굴조사가 한창이라서 꽤나 어수선한 풍경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주변 절터가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옛 폐사지의 정취를 전혀 느끼지 못할 지경이 된 곳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흔히 답사여행의 고급 코스라고 일컬어지는 폐사지 답사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우연찮게도 이들 절터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이곳에 있던 고승들의 사리탑이 한결같이 일본인들의 개인정원이나 총독부박물관으로 수집되어 옮겨졌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일은 대개 무분별한 일본인 골동상의 손을 거쳐 이뤄졌으며, 무엇보다도 조형미가 뛰어나 장식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석조부도(石造浮屠)들이 당연히 이들의 일차적인 목표물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경복궁에서 만날 수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과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구역에 배치되어 있는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 '흥법사 진공대사탑'(보물 제365호), 그리고 여전히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 안에 갇혀 있는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국보 제102호)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대형석탑이나 비석들은 그대로 절터에 남겨졌는데, 골동품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거나 해체이동이 어렵다는 것이 무단반출의 대상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문화재수난사가 얽혀 있는 남한강 유역의 폐사지에 대개 석탑이나 비석 또는 당간지주 한둘만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 절터 몇 군데를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둘러보았더니 전에 보이지 않던 석조물들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서울로 유출된 석조사리탑의 모조품들이다.
충주 정토사지에는 2005년 12월에 설치한 약간 어설픈 형태의 '모형'이 서 있고, 원주 거돈사지에도 2007년 1월에 설치한 '재현품'이 자리하고 있다. 거돈사 쪽의 것은 비교적 정확한 고증과 실측을 거친 탓인지 그 모양이 비교적 정갈한 편이며, 이 모조탑을 세울 때에는 문화재청장도 직접 참석하여 제막식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추진하였던 '문화재반환운동'이 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처지가 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모조품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점이 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 말고도 원주 법천사지와 흥법사지에도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무단반출된 석조유물들의 모조품이 속속 제작되어 원위치에 복구되어 들어선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짜가 진짜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러한 형태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문화재보존의 현실이 자못 아쉬워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이러한 폐사지의 모조석조물과 관련하여 한 가지 꼭 지적해두고 싶은 사항이 있다. 이곳을 찾아가는 도로변의 교통표지판에 버젓이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국보 제102)'이라고만 써놓아 마치 그곳에 진품의 국보가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서둘러 '무슨 탑의 원위치'라거나 '무슨 탑의 모조품'이라고 병기하여 사실관계의 혼동이 없도록 탐방객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다.
가짜는 제 아무리 그럴듯하게 진짜처럼 잘 만들어도 영원토록 가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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