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신중국탄생 60주년을 맞아 국화(國花)를 정하자'는 내용의 글 한토막이 올랐다. 포털 측이 잡담으로 분류한 이 문장은 게재된 지 한나절이 채 되지 않아 접속건수 4만건, 길고 짧은 리플이 1천개를 상회할 정도로 초미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때아닌 꽃 타령이 사이버공간에 봄을 지핀 것이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14억 인구에 5천년의 역사,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국 중국에 국화가 없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100여개의 국가들이 자신의 국화를 정하여 가꾸고 아끼는데 유구한 문화국가이자 세계적인 화훼왕국인 중국에서 아직 국화가 없다. 특히 올해는 명실상부 중국화훼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중국화훼 박람회'가 신중국탄생 60주년 기념행사로 계획되어 있다(9월). 베이징 순이구(順義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사상 전례 없는 국가급 규모의 초대형 행사이고, 연간 600억위안 이상의 소출을 올리는 중국화훼농업의 자존심이 걸린 행사다. 그 외에도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중국국제화훼원예전시회(Hortiflorexpo China) 등 국가급 규모의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어서(4월), 세계인의 이목이 중국의 꽃에 집중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 중국을 상징할 만한 중국꽃(國花)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 3일부터 시작된 정치협상회의에서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고 산동성공상연맹부주석이자 칭저우야오왕그룹(靑州堯王集團)의 대표인 종리청(宗立成)이 '목단(모란)'을 중국의 국화로 지정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다. 요지는 목단을 국화로 지정하는 것은 건국 60주년 경축에도 부합하고, 세계화훼박람회를 위해서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시대정신을 실현하는 데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국화지정 필요성 여부와 꽃의 종류를 둘러싼 공방이 시작되었고, 삽시간에 사이버공간을 꽃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이미 목단이 국화인데 왜 쓸데없이 논쟁거리를 만드느냐는 둥, 꽃 같은 소리하지 말고 배부르게 먹이고 일자리와 살 집이나 달라는 둥 냉소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돈인데 꽃 중에 최고의 꽃 돈꽃(錢花) 외에 무슨 꽃이 더 필요한가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 실제 중국어에서는 화(花)가 '돈을 쓰다'라는 의미(花錢)로 사용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의견 중에는 국화를 정하게 되면 성화(省花) 시화(市花) 구화(區花)까지 정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은 말 그대로 꽃천지로 변할 거라고도 했다.
국화의 종류와 관련해서는 매화와 목단으로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 매화를 추천하는 부류는 중국발전의 길이 아직 요원하고 험한 여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매화처럼 강한 이미지가 중국 상황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매화가 부적절하다는 부류는 매화가 삭막한 북서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天) 땅(地) 사람(人)보다도 먼저 피어나는 꽃으로 너무 냉정하고 강한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에 중국이 지향하는 조화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매화는 번성해서가 아니라 희소성 때문에 귀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고결하고 점잖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할 처지에 있는 중국에게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산유곡에 외롭게 피어서 혼자만 우아하고 지역적으로 개화가 제한된 매화보다는 화려하고 어디든지 필 수 있는 목단이 이미지 면에서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의견을 낸 네티즌들의 대부분은 국화의 지정이 필요하고, 목단이 국화가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미 목단을 국화로 생각하고 있는 이도 상당수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목단을 국화로 한다고 명시한 1915년의 '사해(辭海)'나 매화를 국화로 명시한 1929년의 국민정부에 대한 반발 때문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지금 목단을 재배하기 시작한 위진남북조시대를 찾아가고 있다. 목단을 꽃 중의 왕이라고 칭송했던 당나라, 송나라를 찾아가고 있다. 이는 중국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 피었던 당송시대로의 회귀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다. 매화향 가득한 시기 중국의 꽃 타령을 부러워하며, 외로운 중국이 되지 않으려면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경고 "향기 없는 모란꽃"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길 권한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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