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짜 커피·지역大 장학금·투잡족…불황의 그늘

6일 오후 대구도시공사 1층 로비.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커피 자동판매기 앞에 줄섰다. 이들은 대구도시공사 주변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지난 연말부터 이곳 커피가 공짜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2,300원을 아끼기 위해 나타난 원정 커피족. 인근 주민들까지 합세하면서 도시공사 자동판매기 재료비는 매월 평균 10만원에 그치다 최근 3개월 동안은 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돈을 내 운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잔에 100원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많이 싸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다. 대구도시공사 관계자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 지 모르겠다. 깊은 불황의 그늘이 빚어낸 단면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극심한 불황은 우수 인재들의 가방끈도 고쳐 매게 하고 있다. 영남대 대학본부는 올해 입시에서 우수 지원자들이 대거 몰려 깜짝 놀랐다. 상경대학만 하더라도 성적 우수장학생인 천마장학생이 예년 10여명에 그쳤지만 올해는 60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서울소재 대학 진학이 얼마든지 가능한 우수 학생들. 대구가톨릭대도 수능 1등급 우수 학생들이 지원하는 약대가 장학생 50명을 선발하지 않았는데도 성적 우수 장학생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 사실상 증가했다.

영남대 상경대학 한 교수는 "장학제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우수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대거 몰린 것은 장학금도 받고 생활비를 줄여 부모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학생들의 선택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기업들도 소비자 부담을 줄여 주는 무료 제휴서비스 등의 마케팅 개발에 열올리고 있고 중고물품 가게는 제철을 만났다. KTF는 지난해 하반기 별도의 요금제 가입 없이도 무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통신 제휴 서비스 상품을 출시, 지난 3일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 상품은 고객이 추가 부담금 없이 가입해 현금처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무료 부가서비스다.

대구 서구 비산동 주택가의 중고물품 가게는 전자제품에서부터 사무기기, 구제의류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 가게 주인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루 15개 정도 팔리다 요즘은 30개 가까이 팔린다"고 했다.

경기 불황으로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투잡족'도 급속히 늘고 있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 조사에서 직장인의 16%가 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황으로 줄어든 임금을 만회해보려고 부업을 시작한 것. 현재 투잡족의 78%는 지난해 하반기 전에는 부업을 하지 않았다고 답해 최근의 경제 위기 상황이 이들을 부업으로 이끈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감원 바람이 불면서 직장에서의 고속 승진도 꺼려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4명 가운데 한 명꼴로 고속승진의 기회를 거절하겠다고 답했다. 공기업의 경우 무려 34%에 달했다.

승진이고 뭐고 짤리지 않고 오래 버티는게 중요하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 짙은 불황이 만들어 낸 우리사회의 어두운 풍속도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이재협기자 lj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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