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툭하면 고소 고발…국민 울리는 '정치쇼' 이제 그만

정치권에서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고 고소·고발 등이 난무하면서 볼썽사나운 법치가 지배하고 있다.

급기야 '직권상정' 권한을 무기로 여야 간 타협을 중재한 김형오 국회의장까지 야당 측이 윤리특위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야당 당직자가 여당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도 국회의사당 내에서 벌어졌고 입법활동에 불만을 품은 시민단체 회원이 국회의원을 폭행하는 일도 일어났다. 국회는 지금 지난 12월 국회 때의 폭력 이후 심각한 고소·고발전이 전개되고 있다. 정치권의 이 같은 모습은 정치적 타협을 외면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했던 참여정부의 유산, 혹은 '노무현 효과'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국회는 고소·고발전쟁중

2월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국회는 검찰과 경찰의 조사대상으로 전락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가 각각 상대 당 의원들을 고소·고발함에 따라 조사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국회의장에 대해 "국회법을 위반했다"며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법절차를 무시하고 본회의를 취소했고, 운영위 동의 없이 경찰을 국회로 끌어들여 국회의원의 정당한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의 눈에는 자당 의원들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된 데 대한 '화풀이 정치'로 비치고 있다. 당장 지난 연말 국회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상정을 둘러싼 폭력사태와 관련된 한나라당 박진·구상찬 의원과 신지호 의원, 민주당 문학진·강기정 의원, 민노당 이정희 의원 등 6명의 현역의원들이 소환장을 받았다. 국회사무처로부터 국회내 폭력행위로 고발된 민노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조사도 빨라지고 있다. 국회가 쉬는 동안, 정치권은 검찰과 경찰의 손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 측에선 야당 의원들에 대한 표적수사와 사정분위기 조성을 통한 압박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고 나서 여권과의 대결자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곧바로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을 상해치상혐의로 고소하고 나섰다. 민주당 당직자가 차 의원을 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맞불차원에서 차 의원을 맞고소한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은 지난 6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만났다고 보도한 한 인터넷매체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박 전 대표 측이 언론 보도에 법적 대응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 학습효과'인가

이처럼 정치권에서 쌍방 고소·고발전이 난무하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지난 참여정부 때부터였다. 참여정부 때는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언론사에 대한 정정보도 요청은 물론 민형사소송을 수십여건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도 2006년 4월까지 5차례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언론사에 대한 정정보도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등으로 4곳의 언론사와 1명의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기간 16건의 정정·반론보도 등을 신청하기도 했고, 이와 별도로 청와대도 18건의 언론조정을 신청했다.

당시 법조계, 학계 등 일부에서는 "정부가 언론보도에 대해 제소와 고소, 고발을 남발해 언론의 비판 기능, 권력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소취하와 기각 등으로 별효과가 없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각당은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과 각종 선거법 위반 등을 이유로 수십건을 고소·고발했지만 개원협상과정을 통해 대부분 취하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국회 징계는 '솜방망이'

국회 내의 자체 정화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17대 국회 당시 윤리특위에 제소된 82건(2008년 5월 기준) 중에서 처리된 징계안은 21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출석정지 1건, 사과 및 경고가 9건이었고 부결 5건, 폐기 1건, 철회 5건으로 윤리특위는 있으나마나한 특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처리된 윤리심사안(21건) 중 윤리위반 통고는 7건이었고 나머지는 부결되거나 폐기됐다.

18대 국회 들어서도 국회윤리특위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게 됨에 따라 야당 의원이 쉽게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내 징계가 별다른 징벌적 효과가 없다는 것도 윤리특위의 유명무실화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올 3월까지 국회윤리특위에 제소된 안건은 모두 16건. 이 중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제소한 것이 8건,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제소한 것이 6건, 민노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상대 당을 1건씩 제소했다. 대부분 모욕이나 권위나 명예 실추, 회의 방해, 사회적 물의, 부적절한 발언, 욕설, 소란 행위 등이다.

하지만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솔직히 고소나 제소한 정치인 당사자도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잊어버릴 때도 많고 스스로 철회하거나 기한이 만료하게끔 시간을 끌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제소, 고소할 때에는 국민들이 이를 알지만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결론을 내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정치권의 이전투구 양상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치권이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법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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