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묘안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다. 기업이나 소비자 모두가 한껏 움츠린 채 어서 이 위기가 비껴가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실상 경영이란 위기를 헤쳐나가는 연속적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큰 위기를 넘고 나면 반드시 산업과 기업의 판이 새로 짜이고 이른바 '승자 독식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면한 위기 극복과 함께 위기 이후를 대비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불황기 기업 생존의 일반 원칙으로는 원가절감(Cost), 고객유지(Customer), 현금확보(Cash)의 3C를 꼽는다. 즉 가격 경쟁에서 원가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사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흔들리는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서비스 등을 차별화하며, 비효율 사업을 정리해 현금이라는 실탄을 마련하여 사업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C, 확신(Confidence)을 더한다면 금상첨화이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위기 이후에 대비하여 미래 역량을 구축하며 중장기적인 큰 그림을 행동에 옮기는 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서 분야별 선두주자들은 위기 시에 이런 확신을 행동에 옮기고, R&D에 희망을 걸었던 기업들이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이 붕괴된 이후 미국에서는 기업 구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연구개발에 집중한 기업들이 승자로 부상한 반면, 비용 절감에만 집중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도태되거나 하락세를 면치 못하였다.
그렇다면 '위기에 강한 R&D'란 무엇인가? 우선 상시적이고 꾸준한 R&D를 들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코닝사다. 이 회사는 2001년 110달러에 달했던 주가가 1달러대로 추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제임스 호튼 회장은 "연구를 그만두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선언하고 매출액 대비R&D 투자 비중을 종전의 2배 수준으로 늘렸다. 그 결과 2001년 55억달러에 달했던 적자는 4년 만에 해소되고 2008년에는 순이익 50억달러 이상의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다음으로 새로운 수요 분야를 발굴하는 선도적 R&D가 그것이다. 캐논은 PC, LCD 등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자 자사의 핵심 기술인 카메라를 기반으로 전자계산기와 복사기, 팩스기기를 개척함으로써 재도약에 성공한 기업이다. 또한 인텔처럼 원천기술의 철옹성을 구축하는 독보적 R&D활동도 '위기에 강한 R&D'다. "경기 후퇴 시에도 긴축정책보다 기술개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인텔은 CPU분야에서 후발기업인AMD 등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자로 군림하고 있다.
사람에 의한 R&D 전략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경우 자동차산업과 금융업에 우수 인력을 뺏긴 일본과 달리 1990년대 불황기에도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였다. 유능한 인력을 기반으로 한국 조선산업은 혁신적 신공정을 개발함으로써 2003년 이후 모든 船種(선종)에 걸쳐 확고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포스코도 위기 시마다 과감한 R&D 투자로 난관을 돌파해 왔다. 포스코는 신제철방식인 파이넥스 공법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외환 위기를 맞이하였다. 다른 기업들이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던 때, 선진국들마저 포기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년 1천억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결단을 내렸기에 100년 철강 기술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포스코는 올해 R&D 투자를 지난해보다 더 늘려 잡고 설비 투자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어려운 이 시기에 R&D가 기업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함을 한낱 '배 부른 소리'나 '한가한 얘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모두가 큰 가뭄을 당해 구름과 무지개를 애타게 바라보는 雲霓之望(운예지망)의 심정이나, 위기 극복에만 매몰되지 말고 R&D 투자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바람이 거셀수록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견디는 법이기 때문이다. 불황의 골이 깊을수록 단기수익보다 위기 이후에 대비한 R&D에 힘을 써야, 승자 독식 시대에 선두 기업으로 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상업화와 기술이전율이 낮은 '돈 안 되는 연구'나 '잠자는 연구'는 피해야 한다.
김준한(포스코경영연구소 대표이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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