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해외박사의 규모가 급격히 증가해 연평균 1천100여명, 과학기술 분야에서만 700명을 상회하는 인력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상당수는 귀국보다는 해외체류를 선택한다. 그나마 귀국하는 인재들도 수도권과 대전 지역을 제외하면 지방으로 갈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 많은 지자체가 사활을 걸고 있지만, 한국인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은 더 오기 어렵다.
왜 오지 않을까?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이겠지만 자녀 교육 문제도 주요한 요인이다. 지방의 경우에는 문화 여건도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고급 인재를 수용하려면 수준에 맞는 일자리와, 문화적 환경, 그리고 자녀 교육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10년 전 우리 가족이 두 해를 살았던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를 살펴보자. 주변 지역까지 포함해도 인구가 30만명 정도에 불과한 이 도시는 '작지만 세계적인' 도시이다. 유럽통합의 청사진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1992년 여기에서 체결됐다. 이 도시에는 내가 근무했던 UN대학교를 비롯해 유럽행정연구소 등 국제기구가 있다. 마스트리히트 대학은 대부분의 강의를 영어로 하기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찾아든다. 내가 지도하던 박사과정 학생은 인도, 나이지리아, 시리아,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마스트리히트에서 사는 동안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작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건, 한적한 동네에서 식사를 하건 대부분 영어로 소통이 된다. 주인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에도 친절하게 대해 준다. 외국인에 대한 배척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번은 프로축구를 관전하러 가족 모두 경기장을 갔는데, 입구를 혼동해 귀빈실로 잘못 들어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샴페인을 마시며 사교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웃으며 길안내를 해 주었다. 문화적으로도 대도시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전시컨벤션센터(MECC)에서는 연례적으로 유럽 고미술품 전시회를 개최한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 바이어들이 몰려드는 이 기간에는 호텔 방을 잡기 어렵다. 오페라를 포함한 문화행사와 공연이 연중 이어진다. 파리까지 고속철도로 3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데, 20대 후반의 내 비서는 그때까지 파리를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왜 안 갔느냐고 물으니 왜 꼭 가야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마스트리히트에 살아도 문화적으로 별로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도시규모가 작다 보니 외국인 학교는 기존 네덜란드 학교의 부설로 운영한다. 그래도 이스라엘,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노르웨이,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의 교육에 부족함이 없다. 영국에서 인증한 교육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의료기기, 출판, 디자인, 자동차 부품, 반도체 설계 등의 산업 활동으로 고급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마스트리히트의 경우에는 산업 활동과 생활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선순환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 경우라 하겠다.
대구경북의 어느 권역이, 어느 도시가 이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를 위해 창조도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창조도시란 고급의 일자리를 기반으로 창조적 인재가 모이는 곳이다. 과학과 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이다. 대전은 우리나라 제일의 과학도시이다. 그런데 문화가 약하다. 문화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창조도시 프로젝트를 생각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도시는 경주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라는 대체할 수 없는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또 포항과 울산의 중간 지점으로 이곳의 산업기반과 과학기반을 연계시킬 수 있는 좋은 입지에 있다. 포항-경주-울산을 광역권으로 묶어 창조도시로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여러 지역이 창조도시로의 전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경북 도청이 들어설 안동-예천-영주 지역도 아주 좋은 후보이다. 미래를 향한 꿈을 원대하게 갖고 우리의 도시를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
서중해(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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