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나 붓으로 글씨는 쓰던 옛날에나 필적이 중요하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는 시대에 무슨 필적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필적은 역사이고,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필자는 단정적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항일 운동가의 전형적인 글씨체는 작고 정사각형으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뻗치는 경우가 많다.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인다.' 단지 한두 사람의 필체를 비교 분석한 결과라면 극도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라며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폭력, 마약, 살인 등 강력범죄를 담당한 검사 출신으로 1천여점의 친필 글씨를 모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항일 운동가 400여명, 친일 인사 1천50여명의 글씨를 소장하고 있다면. '글씨 컬렉터'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저자 구본진(45)은 10년 넘게 전국 고서점과 미술상을 돌아다니며 글씨를 모았고, '글씨는 뇌의 지문이며, 글씨가 곧 사람'이라고 말한다.
김구의 졸박성과 이완용의 교묘함, 손병희의 호방함과 최린의 공교함 등이 친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저자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을 거쳐 법무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352쪽, 1만7천원.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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