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꼼짝없이 차 안에서 벌을 섭니다. 혼자 좁은 차 안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노라면 별의별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에게 저렇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는 걸까? 하늘을 원망도 해보고, 눈물도 흘려보지만 언제나 아이 앞에서는 씩씩한 엄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주일(14·대구 경복중 1년)이는 제가 없으면 꼼짝을 못합니다. 짧은 거리는 힘겨운 걸음으로 겨우 걸어다니지만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일도 매번 도와줘야 합니다.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음악이나 미술, 기술 수업 등이 들어있는 날은 몇층을 업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합니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 지 열흘째. "엄마가 학교에서 나 좀 도와주면 안돼?"라는 주일이의 애원에 아침 일찍 함께 등교해 오후 4시 하교까지 함께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벌써 5년을 해오고 있는 일입니다.
주일이가 처음 근육병 진단을 받은 것은 7세 무렵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늦나보다 했을 뿐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주일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4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친구가 장난처럼 부딪쳤는데 그만 호흡곤란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간 것입니다.
"엄마, 나 자꾸 졸려서 좀 자고 있어날 테니까 기다려줘. 엄마만 옆에 있으면 깨어날 수 있으니 울지 말고 있어야 해." 자신의 병을 예감했던 걸까요? 주일이는 이런 뜻모를 말을 남긴 채 20일 이상 혼수상태에서 헤맸습니다. 의사가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꼭 깨어나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그렇게 병원에서 5개월을 보낸 주일이는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숨을 쉬기 힘든 상태가 됐습니다. 걷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를 살려내겠다는 의지 하나로 서울과 대구의 병원을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들었습니다.
그 무렵 남편은 사업이 부도 나 집을 떠나버리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가 됐습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아이들의 작은할아버지였습니다. '함께 살아보자'며 시작한 더부살이였지만 작은할아버지는 아예 집까지 내주고 단칸방으로 옮기셨습니다. 덩치 큰 주일이를 업고 다니기 힘들다며 낡은 마티즈 승용차도 내 주셨습니다. 당신 역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부인을 보살피느라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셨습니다.
요즘은 둘이 마주보며 "이만큼만 되어도 행복하다"고 웃습니다. 예전보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고, 병원 신세를 지는 날도 줄어들었으니까요. 기관지를 절개해 인공호흡기를 꽂고 있을 때는 침대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요즘은 잠자리에 들 때만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면 될 정도로 호흡 상태도 호전됐습니다.
남의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끙끙대며 주일이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 혀를 찹니다. 키 154㎝, 몸무게 60㎏을 넘는 덩치이니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합니다. 사실 이제는 아이를 업는 일이 정말 힘에 부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하늘이 빙빙 돌지만 저는 기꺼이 또 아이를 업습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제가 늘 주일이에게 매달려 있다 보니 큰딸 영애(16)와 막내 주철(13)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아침밥 먹여 학교에 보내는 것이 고작일 뿐, 갖고 싶다고 몇년을 조르는 MP3 플레이어 하나 사주지 못했습니다. 한달에 100만원가량인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 갖고는 주일이 병원비와 재활비용을 감당하기도 버겁습니다. 몇달씩 서울 병원에서 생활할 때는 영애가 주철이 엄마 노릇을 대신해야 했지만 "동생만 괜찮아진다면 참을 수 있다"고 저를 격려해주던 천사 같은 아이들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어 가슴만 아파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른 근위축증 환자들처럼 언젠가는 주일이도 걸을 수 없게 되고, 꼼짝없이 침대 신세만 지게 될 것을요. 선천성 병이다보니 달리 어찌 손쓸 방법조차 없으니까요. 점점 척추측만증이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수술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주일이는 영영 걷기가 힘들어지겠지요.
그래도 저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엄마'라는 말 한마디조차 힘들어했던 주일이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제 몫을 해 주고 있는 두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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