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제2의 심장. '제 눈에 안경'이듯 구두도 자기 발에 맞춰 신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이 발의 모양도 각기 다르다. 서로 다른 발에 같은 규격의 구두를 신어야 한다면 제2의 심장에 가혹하지 않을까? 똑같은 틀에 국화빵 찍어내듯 쏟아져 나오는 기성화의 홍수시대.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 정성이 깃든 수제화는 발을 건강하게 하는 어머니이다. 최첨단 시대에도 수제화만은 전통 방식대로 꿋꿋이 우리의 발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18세의 나이로 구둣방에 취직, 35년을 구두와 함께 호흡해 온 최병순(53'대구 중구 향촌동 비비제화 대표)씨. 명장의 반열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구두에 대한 애착만으로 한 우물을 팠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 최씨는 연간 4회 이상의 신상품 출시와 분기별 100여종의 상품 디자인을 기획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심으로 하루 500여족에 달하는 구두를 만들고 있다. 열정과 노력으로 마침내 자신만의 일가를 이룬 셈이다.
"어렵고 힘들었던 1970년대,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기술을 배워야한다는 굳은 신념 하나로 구두의 세계로 들어갔죠."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의기투합한 최씨는 처음엔 잔심부름을 하며 구두제작과 인연을 맺었다. 기능 분야가 대개 그렇듯 선배들이 선뜻 기술을 자세하게 전수하기를 꺼리는 풍토에서 어깨너머로 구두제작을 배웠다. "처음 구둣방에 들어가 배울 땐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칼에 손'무릎 등을 베이기 일쑤였다"며 당시의 고생담도 털어놨다. 구두제작 공정은 크게 도안, 재단, 제본, 접우(바닥마감)의 과정을 거치는데 남다른 손재주를 지닌 최씨는 특히 접우 기술이 뛰어나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또한 더 나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규모가 큰 공장을 전전하며 적극적으로 구두제작 기술을 익혔다.
구둣방에 취직한 지 8년 만인 1990년 영진제화 공장을 창업, 독립하게 된다. 1999년엔 지금의 비비제화로 제2의 창업을 하면서 562㎡(170평) 남짓한 공간에 25명의 직원과 전문 디자이너까지 둬 구두의 패션화를 선도하고 있다. 최씨는 과거 유명 백화점 OEM(주문자 생산 방식) 납품 판매 위주에서 1999년 이후 대구시 공동 브랜드 '쉬메릭'으로 대구백화점에 입점한 이래 전국으로 백화점 직영을 넓히는 등 수제화 전문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특히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안정된 품질 및 제품의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 마케팅을 바탕으로 차별화한 상품과 경쟁력 있는 가격의 수제화 및 성인 살롱화 등을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직접 맞춰 제작해 준다.
최씨는 2003년 비비제화 제2공장을 추가로 설립하고 올해부터는 현대홈쇼핑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옷으로 치면 1960, 70년대 나일론 소재에서 현재의 면 소재로 넘어왔듯 구두도 합성피혁에서 고급가죽 소재로 바뀌고 있습니다."
뱀'호랑이'송아지 등 100% 고급 천연가죽 소재로 만든 구두를 고객들이 편안하게 신을 수 있게 한다는 게 최씨가 수제화를 고집하는 이유다. 고급가죽으로 만든 수제화는 수작업이라 가죽이나 굽 변경이 가능하고 합성피혁 기계화(기계로 만든 신발)에 비해 땀 흡수가 잘돼 발 냄새 제거에 뛰어난 장점이 있다.
"세계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이탈리아도 구두는 수제화가 대세입니다." 최씨의 또 하나 고집은 구두의 디자인에 있다. 수제 숙녀화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최씨는 대구에선 유일하게 대학 구두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전문디자이너를 두고 있다. 숙녀화의 특성상 구두에 패션을 가미, 예쁘고 섬세한 제품으로 여성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전략에서다. 계절마다 유행이 바뀌듯 구두도 유행에 민감한 것이 디자인에 신경 쓰는 이유 중 하나이다. 최씨는 구두도 패션을 창조하는 첨병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3D 업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아요. 유럽에서는 고교 때부터 자동차'구두 등 분야별로 전문기술을 익혀 장래의 활로를 결정합니다."
최씨는 우리 젊은이들도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생각을 버리고 힘든 일이라도 장래성을 보고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적 추세도 그렇거니와 한국도 수제화의 시장이 매우 밝은 편이라고 최씨는 말한다. 대구의 수제화 시장은 전국 10% 정도를 점하고 있는데 8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서울을 제외하면 지역으로 볼때 최대 생산지인 셈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구두를 신을 수 있도록 열정을 쏟겠습니다. 몇 대를 거쳐 가업의 전통을 잇는 일본처럼 저도 대를 물려 가업으로 전수하는 게 꿈입니다."
화려한 외양이나 일시적인 편리함을 버리고 35년간 묵묵히 손으로 구두제작 외길을 걸어온 최씨의 웅변이다.
전수영기자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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