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산 주목 원목장롱'.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소리지만 과거에는 있었다. 오늘날 독도의 식생을 볼 때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울릉도 노인들은 옛날에는 독도에 나무가 많았다고 증언한다. 바위틈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독도 나무들은 목질이 단단해 배 만드는 나무못이나 홍두깨 따위를 만들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결이 아름다운 독도산 나무로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독도에서 자라는 나무는 줄잡아 100그루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나무의 밑동이 어른 장딴지 굵기 정도의 섬괴불나무. 가장 오래된 나무는 동도 천장굴 북사면에 있는 사철나무이다. 수령이 120년은 넘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암벽을 기어오르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다.
독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도 사철나무이다. 상록 활엽수인 사철나무는 천장굴 남·북 사면에 20여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사람이 심은 것과 자생종이 혼재한다. 서도에서는 최고봉인 대한봉 아래 절벽 끝과 탕건바위 정상 사면에서 관찰된다. 독도의 사철나무는 육지의 그것과는 달리 높이 자라지 못하고, 줄사철나무처럼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자라는 특성을 보인다.
1.5m 가까이 자라, 독도의 거대수(?)인 섬괴불나무는 서도 물골 넘는 고개 북사면 쪽에서 발견된다. 동도에도 경비대 막사 주변에 심은 몇몇 그루가 자라고 있으나, 서도의 섬괴불나무는 동도와 달리 자생종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나마 독도에서 착근(着根)에 성공한 수종이 섬괴불나무 정도로 보인다.
그 외 한 두 그루 눈에 띄는 것은 보리밥나무와 동백나무. 보리밥나무는 서도 물골 고개 꼭대기 부근에 두어 그루 보이며, 동백나무는 동도 유류탱크 뒤쪽에 한 그루가 도드라져 보인다. 두 종류 모두 조림한 것이다.
울릉군이나 단체가 특히 조림에 신경을 쓴 수종은 나라꽃 무궁화와 울릉특산 향나무로, 각각 231그루와 289그루를 심었으나 지금은 모두 고사하고 한 그루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독도 나라꽃 무궁화심기운동'이 다시 논의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생장 가능성이 낮아 안타깝다.
독도의 나무심기는 1973년부터 시작되었다. 울릉애향회의 식목행사를 신호탄으로 울릉산악회·해양경찰대·울릉군·푸른울릉 독도가꾸기모임 등의 단체들이 참여해 모두 1만2천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1995년 이후에는 독도 문화재보호구역 생태계 보전을 위해 조림을 하지 않고 있다.
독도, 특히 동도에서는 나무를 쉽게 만나기 어려운데 헬기장 옆 사면과 등대건물 해안 쪽 사면에서 안타까운 광경이 목격된다. 10년은 족히 자랐을 법한 곰솔 고사목 둥치가 하얗게 빛이 바래가고 있는 모습이다. 밑둥치가 한 웅큼이나 되도록 넉넉하고 키도 1.2m 정도로 자라 잔가지를 많이 뻗었는데 갑자기 고사한 흔적이 역력하다.
곰솔은 지난 20여년 동안 9천 그루를 심어 독도에서 가장 많이 심은 나무임에도 지금은 한 그루도 자라지 못하고 있다. 학자들은 염분으로 인해 곰솔이 생장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과거 독도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에 따르면 수년 전 동도에 화재가 일어나 참억새 검불에 옮겨 붙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그을려 죽은 건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울릉산악회 회원으로 1973년 독도 나무심기 첫 해부터 참여한 이예균(61) 푸른울릉 독도가꾸기모임 상임고문은 "1948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 공군이 독도를 폭격연습장으로 썼기 때문에 독도가 천둥벌거숭이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토사 유실을 방치하기 보다 적극적인 조림으로 훼손된 산림을 회복하는 것이 생태계 보전을 위한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인간이 훼손한 것들은 인간이 되돌려놓아야 한다. 우리 시대 '독도산 주목 원목장롱'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서도 정상 곰솔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며 기념촬영'이란 제목으로 사진 한 컷쯤은 찍어보고 싶다. 30년 정도 지나 내 손자 손을 잡고 와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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