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질 때

우리가 물려받은 '다스릴 권리' 언제든 돌려줄 수 있는 준비를

'권력의 맛'이라는 말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있기에 권력을 '맛'이라는 말로써 표현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맛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여러 권력 위나 아래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권력을 갖기 위해, 차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거쳤기 때문에, 그리고 그 권력을 갖게 되는 순간 자신의 능력이 인정되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 같다.

권력은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오래 머물렀다 가버려도 우리에게 아쉽게 여겨지는 이 화려한 권력은 어쩌면 우리에게 잠시 위임된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권력이 위임된 것이라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위임된 권력은 아담에게 신이 내린 최초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세상 창조에서 가장 공을 들인 마지막 일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동물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을 다 만든 후에 신은 단련된 솜씨로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만든 이후 신은 "네 마음대로 다스리라"는 명령을 그에게 내리신다. 이 위임된 권력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허락되어 왔기에 우리는 이 권력을 위임받은 일에 습관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근본을 더 잘 잊게 된다. 우리는 이 일에 익숙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면 위임된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우리는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위임된 권력 안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신이 아담에게 '다스릴' 권리를 위임했을 때 그 권력 안에는 하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하와를 다스릴 권리까지도 우리에게 포함시키려 든다. 내가 받은 권력이 너무 커 보이고 강해 보여서 무엇이든 가능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위임자가 항상 우리를 주시하고 있음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것인 양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휘두를수록 엄청난 힘이 배가되는 줄 알고 있다. 착각이다.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다.

우리에게 권력을 위임한 이가 어느 날 더 이상 네게 권력을 놔둘 수가 없구나, 네가 지나치게 마구 휘두르는 것을 더 이상 봐줄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생명도 그렇다. 그 생명의 주인이 가져가기만 하면 금방 우리에게서 떠나 버릴 것이다. 어느 부자에게도 이런 일이 닥쳤다. 부자가 곳간에 배부르게 쌓아두고 이제 마음껏 즐기리라고 말하던 날 밤에 그에게 신이 찾아왔다.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몹시 아까워하면서 죽었을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부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깨끗하게 가꾸어야 한다. 우리의 몸 역시 그렇다. 우리의 조상은 이 점에서 참으로 현명하고 올바른 길을 택하려 노력했다.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머리카락조차도 자를 수 없다고 했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던 어느 성인의 말처럼 혹시 나 자신만을 위해 그것을 함부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면 나를 '부처님 손바닥 보듯' 잘 아는 나의 일인자의 노여움을 사게 되지는 않을지 가끔 생각해 보자.

그것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니라 위임된 권력이므로!

정 막 래(계명대 교수 러시아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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