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유머] 三食새끼

일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유림단체인 담수회(淡水會)의 몇몇 어르신들과 점심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익장들과 가벼운 술잔을 나누면서 나는 그분들보다 20, 30년 젊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이 여든여섯에 총무가 웬말이냐!"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며,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즘 골프치러 나가면 드라이버 거리가 예전같지 않다"고 불평을 토로하는 정경을 지켜보며 재미있는 골프 유머가 하나 떠올랐다.

적잖은 세월 함께 골프를 즐겨온 70, 80대의 골프 애호가 4명이 있었다. 하루는 모처럼 명품 골프장에서 멋진 라운딩을 하다가 한 사람이 "저승에도 골프장이 있을까?"란 화두를 던졌다.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란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또 한 사람이 "그럼 우리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저승에 가는 사람이 문제를 낸 사람 꿈에 나타나서 '골프장의 유무'를 꼭 알려주기로 하자"는 제의에 모두가 동의하면서 그날의 논란을 매듭지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저승 골프장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사람의 꿈에 정말 나타난 것이었다. 꿈에서 저승 간 골프 친구를 만난 노인은 채근하듯 물었다.

"그래, 정말 저승에도 골프장이 있던가?"라는 질문에, 꿈에 등장한 친구의 대답은 예상보다 만족스러웠다. "아무렴, 있고 말고. 페어웨이가 넓고 평평한데다 그린도 크고 부드러워 웬만하면 파(par)를 잡을 수 있다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더 덧붙여서 하는 말이 "그런데 말이야, 자네 다음 주말에 저승 골프장에 부킹이 되어 있더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꿈을 꾸던 노인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벌떡 일어났을 것은 불문가지다.

아무리 저승 골프장이 좋다고 한들, 홀마다 파를 잡을 수 있다고 한들, 이승만 할까…. 어쨌거나 나이 여든이 넘도록 골프를 즐기고 저승 골프장에까지 부킹을 해뒀으니 복노인(福老人)이 아니고 무엇인가.

늙을수록 빈부(貧富)의 체감지수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욱이 그렇다. 대구시내의 경우만 하더라도 종로 일대에서 회초밥으로 점심을 즐기고 미도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왕년의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노인은 1등급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형편에 미치지 못하는 노인들은 큰길 건너 경상감영공원 쪽을 택해야 하고, 그마저 어려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인들은 달성공원 무료급식소를 찾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요즘 40, 50대 주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런 유머도 오늘 이 나라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노인들의 서글픈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머잖은 앞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른바 '食'자 돌림 Y담이다. 현직에서 은퇴를 하고도 삼시(三時)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능력있는 남자, 즉 집에서 아내에게 한 끼도 신세지지 않는 사람을 '영식(零食)선생'이라고 하고, 한끼만 안방마님의 손을 빌리는 사람을 '일식(一食)씨', 두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사람을 '이식(二食)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에서 '씨'에 이어 '김군, 이군' 할 때의 '군'자가 붙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삼시 세끼를 모두 집에서 안사람의 상차림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은 '삼식(三食)새끼'라 하여 '새끼'라는 딱한 호칭이 붙는다는 것이다. 노후대비가 시원찮은 남자들은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다. 늙으나 젊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올봄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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